정원범 / 대전신학대학교 은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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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교회든 공동체 생활을 하는 데 정말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소통하는 능력이다. 소통을 잘 하지 않고서는 건강한 공동체, 행복한 공동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소통을 잘 할 수 있을까? 소통에는 자신과의 대화인 내면소통(내가 나와 하는 소통)이 있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인 대인소통이 있다. 내면소통의 형태로 혼자 생각하기, 셀프토크, 글쓰기, 상대방의 말을 듣고 해석 또는 이해하는 과정 등이 있다면, 대인소통의 형태에는 대화, 스피치, 토론, 회의, 협상, 정보전달 등이 있다.
그런데 대인소통을 잘하려면 내면소통을 잘 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와의 대화를 잘 못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와의 대화를 잘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모든 내면소통은 대인소통의 기초이며 모든 소통은 내면소통의 반영이다.“
자기와의 대화를 잘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잘 할 수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 말은 만약 내가 부정적 말을 듣거나 나에게 부정적 사건이 일어날 때 내 안에서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우리 뇌의 능동적 추론 시스템(자동화된 스토리텔링 방식, 습관화된 내면소통 방식)이 늘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그것을 건강하게 바꾸지 않고서는 건강한 대인소통을 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대인소통을 잘 하기 원한다면 무엇보다 내면소통을 건강하게 잘 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이 훈련 중의 하나가 인지치료인데 그것은 먼저 나에게 자동화된 잘못된 내면소통 방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또는 어떤 부정적 생각이나 강박적 사고를 습관적으로 반복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첫 번째 작업이고, 그 다음은 그것을 건강한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바꾸는 작업이다. 말하자면 부정적인 내면소통 방식을 긍정적인 내면소통 방식으로 바꾸는 작업이 인지치료의 핵심이다.
그러면 나에게 자동반사적으로 일어나는 부정적인 스토리텔링 방식, 습관화된 내면소통 방식을 어떻게 긍정적인 내면소통 방식으로 바꿀 수 있을까? 그 방법이 바로 명상훈련이다.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명상훈련은 뇌의 작동 방식은 물론 구조까지 변화시킨다고 한다. 뇌과학 연구를 이끌어 온 리처드 데이비드슨은 사람들에게 8주 동안 하루 한 시간 정도 명상훈련을 시킨 결과 뇌의 작동 방식이 달라지고, 면역력이 강화되었으며 전반적으로 더 행복하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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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이 무엇이길래 그런 엄청난 효과를 나타내는 것일까? 김주환에 따르면, 명상은 경험자아인 마음이 만들어내는 내면의 소음(의식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생각, 감정, 스토리텔링 등의 소음)을 가라앉히는 것이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이고,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고, 통제하고 조절하려는 의도를 내려놓는 것이다. 또한 명상은 일상적인 경험자아(에고)를 넘어 늘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배경자아(진짜 나)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런 의미의 명상은 기독교 영성수련에서 말하는 향심기도(Centering Prayer)와 비슷한 면이 있다. 향심기도 역시 놓아버리는 훈련이고, “생각과 욕망과 단어들, 그리고 결국 자기 자신을 놓아버리는 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명상과 향심기도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향심기도의 목적이 단지 모든 생각을 놓아버리는 데만 있지 않고, 하나님의 현존과 하나님께서 온전히 활동하시도록 완전하게 우리 자신을 열어드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
어떻든 명상의 효과는 대단하다. “명상을 꾸준히 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평온해지고 그 평온함 속에서 지극한 행복감이 올라 온다.... 명상을 계속 하다 보면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아무 것도 원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충족감과 만족감이 차오르면서 마치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풍요로움도 느껴진다. 오유지족의 상태다.”라고 김주환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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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온함과 마음의 완벽한 충족감을 느끼는 바로 이런 마음의 상태가 다윗이나 하박국 선지자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품 안에서 참된 쉼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의 마음 상태이지 않을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시 131:2)
“비록 무화가 나무가 풍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정원범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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