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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의 재설정이 필요한 교회

기사승인 2022.11.30  10:5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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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준식 목사 컬럼 [기후교회로 가는 길]

장준식 목사/ 미국 세화교회 담임

   
▲ 장준식 목사

  CO2.Earth에 보면 대기 중 탄소 농도 수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즘 탄소 농도는 415ppm 근처를 맴도는 듯합니다. 요즘 우리는 아무리 바빠도 주식 시세 확인하는 데는 시간을 쓰지만, 탄소 농도 확인하는 데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짐 안탈 목사는 『기후교회』에서 아주 재미난 말을 합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주소에 살고 있는데, 그 주소는 407번지라고 합니다. 책을 쓸 당시 지구의 탄소 농도는 407ppm이었던 듯합니다. 책이 출간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탄소 농도가 조금 더 올라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같은 주소에 살고 있습니다. 탄소 농도가 바로 우리가 살고있는 집의 주소를 가리킵니다. 매우 재미있는, 그리고 의미 있는 상상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떠한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제시해 주는 선지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구약의 예언서는 우리에게 좋은 지침서가 됩니다. 이사야서나 다니엘서 같은 대선지서와 아모스와 말라기 같은 소선지서를 보면,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당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의견을 피력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목표를 설정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합니다. 목표 설정을 잘한 공동체는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공동체는 멸망 당할 것이라는, 다소 단순해 보이는 메시지가 전해집니다.

   
 

메시지의 선포는 단순하지만, 그것을 수용하고 따르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선지자들의 메시지 선포가 현재 우리에게 표면적으로 다가와서 그렇지, 그 당시 사람들은 살아가느라 삶에 묻혀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파악을 하지 못했으니까요.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경험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삶의 문제가 무엇인지 잘 모를 뿐더러, 설사 알고 있다 하더라도 삶의 방식을 바꾸거나 목표를 재설정하는 일을 잘 하지 못합니다. 생활방식을 바꾸는 일은 하루 아침에 되지 않을 뿐더러,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바뀝니다. 그러면서 인류가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도 바뀝니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때그때 마다 인류가 맞닥뜨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헌신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발견합니다. 6세기의 베네딕트(Benedict)회 수도사들은 로마제국의 붕괴와 더불어 유럽의 경작지들과 숲이 파괴된 사실에 초점을 맞춰, 숲에 나무를 다시 심고 물이 흐르는 길을 새로 내고 개울과 연못을 만들어내고 퇴비거름을 개발하여 소개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들은 땅과 물의 회복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신앙의 실천이자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고 믿었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나치 정권에 맞서 ‘고백교회의 비상 교육 신학교’(핑켄발데/Finkenwalde)를 세워, 나치 정권이 하는 일에 대하여 “의견을 달리하고 저항하는” 그리스도인과, “영적인 훈련, 희생, 그리고 확장된 도덕적 상상력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방식의 기독교인”을 양성하고자 했습니다. (기후교회, 112쪽)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에 맞는 목표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짐 안탈 목사는 묻습니다. “교회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한때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제공해주었던 필요들을 이제는 사람들이 다른 방법들을 통해 성취하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만 보더라도, 선교 초기에 사람들은 교회가 제공하는 교육이나 복지를 제공받으려고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그러나 교육기관이 발달되고 복지사회가 되면서 이제 교육과 복지를 위해서 교회를 찾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민교회의 상황도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예전에 이민자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 한국 음식이나 문화에 대한 그리움 등을 달래기 위해서, 그리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통신과 교통수단의 발달, 그리고 경제적 풍요로 인하여 그러한 것들은 직접 해결 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요즘엔 시간이 없어서 한국에 못 가지 돈이 없어서 못 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교회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수많은 위기를 맞닥뜨리고 있는 이 시대에, 교회가 목표를 재설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요청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이것은 도덕적인 신앙의 결단입니다. 교회는 어떻게 목표를 재설정해야 할까요? 짐 안탈 목사는 교회의 목표 재설정을 위해서 미국인과 미국교회를 비판적으로 돌아보고 있는데, 그 비판은 한국인과 한국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한국 사회는 너무도 미국 사회와 닮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미국인 정서의 가장 특징적인 것 중의 하나는 엄격한 개인주의입니다. 그렇다 보니, 미국교회는 그 정서에 부응하여 오랫동안 개인구원에 집중하는 ‘복음’을 전해왔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가 가진 특징입니다. 한국 사회가 경제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60, 70년대에 미국의 복음주의를 배워온 한국 목회자들에 의해서 한국교회도 미국교회처럼 개인구원에 대한 복음을 대중화시켰습니다. 이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점차 개인화되어 가는 한국인들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기후위기를 통해서 인간이 살아가려면 인간만 잘 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머지 피조물과도 상호의존 가운데 있다는 것을 통감하게 되었습니다. 기후위기가 교회에 주는 교훈은 너무도 명백합니다. 인간의 영혼 구원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그동안의 신앙 행태는 잘못된 것이고, 모든 만물에 대한 구원으로 구원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일은 너무도 중요한 이 시대의 신앙의 과제가 된 것입니다. 즉, 인간 중심의 구원론에서 하나님 중심의 구원론, 또는 종말론적 구원론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는 구원을 말할 때 인간 개인의 구원만을 더 이상 말할 수 없고, 총체적인 구원(holistic salvation)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지구의 구원 없이 인간의 구원은 없다’라는 말로 바꾸어 쓸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우리는 ‘황금률 2.0’에 대하여 반드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짐 안탈 목사는 말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부르심을 받았고, 또한 이 새로운 지구 위에서, 우리는 미래의 세대들이 오늘 바로 이웃집에 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웃임을 인정해야 한다”(기후교회, 126쪽). 이 황금률은 기후변화에 맞선 청소년들의 단체 “우리 어린이들의 신뢰(Our Children’s Trust)의 활동을 통해서 부각됩니다. 이 단체의 청소년들은 지난 2015년, 미국 연방 정부를 상대로 다음과 같은 소송을 걸었습니다. “미국이 기후변화 때문에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권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하지 못한 것은 헌법을 위반한 것이다!” 황금률 2.0은 지금 현재 동시대에 존재하는 사람들만 우리들의 이웃이 아니라, 앞으로 올 세대(generation to come)도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기후변화에 도덕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 시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하여 극심하게 겪게 될 당면한 사회적 문제들을 앞에 놓아두고, 교회가 목표를 재설정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목표를 재설정해야 하는 지도 분명해 보입니다. 이 주제에 대하여 우리 시대의 선지자 역할을 하고 있는 토마스 배리(Thomas Berry)나 래리 라스무쎈(Larry Rasmussen) 같은 신학자들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산업 공학기술 시대에서 생태 시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특별히, 라스무쎈은 지난 170년간 땅에 근거한 경제로부터 자연을 착취하며 자연이 유기체적으로 신생을 못하게 만드는 산업경제로 체제가 이동하는 동안 교회는 이에 저항하지 못하고 목줄에 매인 듯 개처럼 질질 끌려왔다고 비판합니다.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더 이상 교회는 개처럼 질질 끌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묻습니다. “교회는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장준식 목사(미국 세화교회 담임): “나를 키운 건 팔할이 교회다”라고 고백하며, 교회에서 태어나 교회에서 살아온 ‘교회오빠’ 출신, 삼대째 감리교 목사다. 현대 사회에서 교회의 공적 역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여전히 교회는 우리 시대를 보듬어 안을 수 있는 희망이라고 믿으면서 구원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리 사회를 위하여 무슨 사역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조직신학을 전공했고, 문학과 사회학, 현대철학 등 인문학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며 글쓰기를 즐긴다. 연세대학교와 에모리대학교, 그리고 GTU(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PhD)에서 공부했으며 한국문단에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장준식 목사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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