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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목사 “신유와 은사 다양성 존중 되야”

기사승인 2017.11.07  1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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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언과 신유 가지고는 목회 안 돼… 주변부로 밀려나”

<교회와신앙> : 윤지숙 기자 】 ‘신약은 질병과 치유를 어떻게 말하는가?’를 주제로 열린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회장: 김추성)의 제3회 목회자초청공개심포지엄에 남포교회 원로인 박영선 목사가 패널 토의자로 나섰다. 11월 4일 서울 삼광교회(담임목사: 성남용)서 개최된 이 세미나에는 이날 신약학 학자들뿐 아니라 일선 목회자들 90여명이 참석했다.

박영선 목사는 패널로서 목회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 회중들의 존경의 박수로 큰 호응을 받았다. 질병과 치유에 대한 박영선 목사의 소회를 들어보았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1970-80년대 한국교회의 부흥기 때 많은 신앙적인 질문과 갈등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느 날, 새까만 졸따구들이 저를 찾아와서는 뜬금없이 “형님!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속으로 ‘이 새끼들이 교회생활 같이하고는, 감히 나한테 구원의 확신이 있냐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3대째 믿는 집안이었고. 성경 여러 번 읽었고.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질문이 도전이 됐습니다.

   
▲ 박영선 목사 ⓒ<교회와신앙>

‘제 네들도 나하고 똑같이 신앙생활 했는데.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걸까?’ 그들에게는 어느 날, 어느 시, 어디에서라는 확실한 것이 있더라고, 나는 없고. 그 당시에는 ‘저 놈들이 틀렸나? 내가 틀렸나?’의 문제가 중요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부흥회에 강사로 오신 분을 통해 나름의 답을 찾았습니다.

어떤 스승이 제자 2명에게 20Kg의 돌을 가져오게 시켰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20Kg의 돌 하나를 가져왔고, 다른 한 사람은 조약돌로 20Kg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로 가져다 놓으라고 했을 때, 돌 하나를 가져온 사람은 금방 가져다 놓을 수 있었지만, 조약돌로 가져온 사람은 가져다 놓지 못했답니다. 저는 20Kg을 조약돌로 모아왔겠지요.

구원은 경험과 사건에 있지 않고 결과에 있습니다. “예수가 누군지 아느냐,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아느냐에 목적이 있지. 경험과 확신에 있지 않다.”는 말이 저에게 새 세상을 열어주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믿는다가 시작이라고 제 관점을 바꾸게 됐죠.


“구원 이후의 삶이 중요해”

저는 중간에 믿은 사람들의 체험과 감격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관심이 구원에 있지 않고 구원을 받은 다음에 무엇이 있느냐에 있습니다. 구원 받은 다음에 금방 데려가시면 간단한데. 현실적으로 안 데려가신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무엇을 해야 되는가? 최소한 능력을 주시거나, 평안을 주셔야 되는데. 둘 다 안주신다라는 거죠. 이걸 어쨌든 해결해야 되는 것이 시급한 목회 현장이죠.

구원이 아니라 구원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천국으로 데려가면 쉬운데. 왜 아직 세상에 남겨두고 고난 속에, 한계 속에, 후회 속에 있게 하느냐가. ‘구원 그 이후’에 대해 제가 제목으로 삼았던 이유가 됩니다.


“신유은사도 믿음에 어떻게 작용하는가가 중요”

신유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하는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당연히 예수 믿은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이 변화 되는가 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 이지요.

애를 낳는 것과 생명과 존재를 가르치는 건 다른 일입니다. 부모가 되는 것과 스승이 되는 것은 다릅니다. 누가 더 나으냐고 하는 것은 미련한 질문입니다. 부모는 독특한 지위라서 부모도 틀려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전혀 다른 자리에 세우셨습니다. 둘을 동시에 가질 수 없습니다. 둘이 달라서 이중창을 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화음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른 것만큼 깊고 넓어지게 됩니다. 다른 음을 내는데 맞다 틀리다 하는 것은 병신입니다. 다른 음을 내서 기가 막힌 화음을 내는 것입니다.

각각의 신유의 은사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이 증언하시는지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이해는 그렇게 하심으로. 말이 안 되는 자리, 말이 안 되는 조건에서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심으로. 하나님은 만유 회복하신다는 증거를 받습니다.

방언의 은사가 터지면, 성령님은 우리 중에 함께 하시며, 나에게도 이미 와 계신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일어나고 나에게는 왜 안 일어나느냐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역사적 우주적 하나님의 개입, 완성, 능력에 대해 넓이와 깊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중심부와 주변부의 조화가 필요해”

이중창은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눠집니다. 언제나 그 시대에 대중적인 것이 중심부를 차지합니다. 중심부는 체계를 가지며, 질서를 가지며, 모두의 평균치를 올립니다. 학교같이, 단체같이 회원들에게 최소한의 자격과 지위를 요구합니다. 그것이 폐쇄적으로 갑니다. 그것을 깨는 것이 주변부입니다. 중심부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창조가 주어집니다. 한 조건이 영원토록 가지 못하는 것은 매너리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시대에는 한국교회 중심부였던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가 순복음에 의해서 일격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해서 이단시비까지 걸게 됐죠. 왜 마음을 열게 됐습니까? 자기 입에서 방언이 터지는데 할 말이 없는 거죠. 한국교회가 그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방언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고, 유명한 기도원에 가면 방언이 잘 터지는 자리까지 비싸게 받았습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방언과 신유가 최고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가지고는 목회가 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현실이란 타협해야 되는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도전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상상 속에 있거나 기대 속에 있거나 말만 하는 것을 막으시고. 실제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하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목적과 대상으로써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입니다.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에 대한 기대”

이런 것들이 우리를 가장 크게, 풍성하고, 긍정적인 믿음으로 이해되어서 어느 교회든지, 특징을 가지며 다양하며 서로가 서로를 예의와 기대를 갖는 것이 당연한 열림. 믿음으로 가는 것을 목회현장에서 경험을 했습니다. 또 어느 누구와 만났을 때. 어느 목회자를 만나든지, 적극성과 긍정성을 권면하고 싶습니다. 세상이 무서운 것보다 하나님이 더 크십니다.

우리는 피아노의 한 건반 같습니다. 곡마다 자기가 여러 번 음을 내기도 하고 어느 곡에서는 한 번도 음을 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피아노는 이빨이 빠져 있으면 안 됩니다. 얼마나 위대한 곡이 나오느냐는 오직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충성과 순종과 겸손이라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위대한 것입니다.


※ 박영선 목사는 평안북도에서 출생하고, 한양대학교 전기공학과와 총신대 신대원(M. Div.)를 졸업하고, 미국 Viginia, Liberty Baptist Seminary에서 기독교교육 전문학위인 M.R.E.(Master of Religious Education)과 명예신학박사인 D.D.(Doctoer of Divinity)를 받았다. 남서울교회 설교목사 및 임시 담임목사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실천신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남포교회를 개척해 시무하다가 은퇴해 원로목사가 되었으며, 일병목회연구소를 설립해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윤지숙 기자 joshuayoon72@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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