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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탁명환 소장 25주기 추모예식 및 e자료집 헌정식

기사승인 2019.02.18  17: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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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8일 11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소강당

<교회와신앙> 장운철 기자고 탁명환 소장(국제종교문제연구소, 현대종교) 25주기 추모예식 및 e자료집 헌정식이 지난 2월 18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5가에 위치한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열렸다. 1부 추모예식은 탁지일 교수(현대종교 이사장 겸 편집장, 부산장신대학교 교수)의 사회로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됐다. 한정희 목사(현대종교 사목)의 대표기도에 이어 탁지웅 신부(일본성공회 동경교구 사제, 고 탁명환 소장 3남)가 요한복음 14:1-3의 성경봉독으로 이어졌다.

   
탁지일 교수가 추모예식 사회를 보고 있다

홍성현 목사(수송교회 은퇴목사)는 설교에서 “고 탁명환 소장은 우리 한국교회를 이단사이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생을 바쳐온 분”이라며 “이단을 상대로 싸우다가 한 이단자의 칼에 목숨을 잃은 고 탁명환 소장을 한국교회가 순교자로 추모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설교 후 탁지원 소장(현대종교 대표)이 고인의 약력을 소개했다. 고 탁명환 소장은 1964년 한국의 신흥종교와 기독교이단 운동의 연구를 시작한 이래, 수많은 강연과 세미나를 통해 반사회적이고 범죄적인 사이비 종교를 조사하고 연구해 온 것과 지난 1994년 2월 19일 새벽 0시 10분 괴한의 피습을 받고 하나님에 품에 안기기까지의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했다.

   
최삼경 목사가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최삼경 목사(빛과소금교회, <교회와신앙> 상임이사)는 추모사에서 “이단연구를 하시며 겪은 그 숱한 아픈 이야기들로 나누며 밤을 새우기도 하고, 신세한탄도 하며 같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였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며 “우리도 소장님처럼 한국교회를 조금이라도 살리기 위하여 겸손하게 눈물로 기도하며 싸우고 싸워, 하나님의 부름이 있을 때까지 소장님의 뒤를 따르겠다”고 언급했다.

진용식 목사(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 소장, 안산 상록교회)도 추모사를 통해 “고 탁명환 소장은 지난 1985년 당시 전주에서 시무하는 교회에 찾아와 이단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있는 나를 보호해 주셨다”며 “오늘 내가 이단사역 전문가가 된 데에는 탁명환 소장님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재욱 목사(부천153농인교회)는 수화를 통해 “1991년 합정동 농인교회에 이단세미나 강사로 오셔서 처음 만났다”며 “당시 이단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농인들에게 매우 큰 도움을 주셨다”며 당시의 일을 회상했다.

유가족을 대표해 인사를 하기로 했던 김춘심 권사(고 탁명환 소장 아내)가 거동이 불편한 관계로 이날 참석을 하지 못했다.

   
진용식 목사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오영택 목사(하늘비전교회)의 축도로 1부 추모예식이 마쳐졌다.

2부에서 ‘고 탁명환 소장 e자료집 헌정식’이 열렸다.
탁지일 교수는 헌정식 인사를 통해 “지금 제가 아버지 소천하신 나이가 되었다”며 “선친이 하셨던 일을 아들 셋이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힘들게 여기까지 이어왔다”고 말했다. 탁 교수는 “선친이 남기신 것들, 23권의 저서와 100여 편의 논문들을 한국교회를 위해 내놓기로 했다”며 “목회자, 이단연구가는 물론 필요하신 분들을 위해 e자료집으로 만들어 USB에 담아 오늘 참석하신 분들에게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아직 동영상 자료들과 음성 자료들이 많이 있다”며 “형편이 되는 대로 정리해서 역시 한국교회를 위해 내놓겠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8기가 용량의 USB에 6기가가 넘는 고 탁명환 소장의 저서와 논문들이 pdf파일 형태로 들어 있었다.

헌정식 이후 현대종교 관계자들이 모두 나와 인사를 했다. 또한 관계자들의 소개로 모든 예식이 마쳐졌다.

탁지원 소장이 요약 정리한 ‘이단연구가 탁명환 소장’ 약력

탁명환 소장은 1964년 한국의 신흥종교와 기독교이단 운동의 연구를 시작한 이래, 수많은 강연과 세미나를 통해 반사회적이고 본죄적인 사이비종교를 조사하고 연구했다. 왕성한 저술활동을 통해 <기독교이단연구> 등 26권의 신흥종교운동 및 기독교이단관련 서적들과 수많은 논문들을 출간했으며, 이 조술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기독교이단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여러 언어로 번역된 <기독교이단연구>는 일반인들과 학계에서 널리 참고 되고 있으며, <한국의 신흥종교>는 한국의 신흥종교에 관한 종교부문 필독서로 자리잡고 있다.

   
고 탁명환 소장의 3자녀(탁지일, 탁지원, 탁지웅)가 예식에 참석한 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탁명환 소장의 종교문제 연구가로서의 활동은 크게 세 분야로 구분된다.
첫째, 탁명환 소장의 관심은 초기에는 순수한 신흥종교운동에 대한 연구였다. 1956년 신흥종교단체인 ‘영주교’를 목격한 후, 탁명환 소장의 신흥종교운동연구가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는 계룡산 신도안을 1967년부터 1984년까지 출입하면서, 신도안을 중심으로 전국에 퍼져있던 신흥종교운동들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의 집요한 연구와 탐색으로 인해, 주변사람들에게 ‘계룡산 출입지가’로 알려졌다.

둘째, 탁명환 소장은 ‘동방교’, ‘용화교’, ‘섹스교’, ‘오대양사건’, ‘영생교승리제단’ 등의 혹세무민의 반사회적이고 범죄적인 신흥종교운동을 접하면서, 그리고 피해자들과 의 만남을 통해서, 반사회적 범죄적 신흥종교운동 연구라는 새로운 분야로 그의 연구의 방향과 폭을 넓히고, 1970년 ‘신흥종교문제연구소’를 설립한다. 이때로부터 탁 소장은 일부 타락한 신흥종교운동들의 반사회적 범죄행위를 사회에 고발하고 그 대책을 세우는 일에 몰두하는 한편, 이로 인해 많은 폭력과 테러를 당하게 된다.

셋째, 탁명환 소장의 활동은, 그의 종교적 배경과 관련하여 ‘통일교’, ‘전도관’, ‘장막성전’, ‘칠사도교회’, ‘구원파’, ‘대성교회’, ‘다미선교회’ 등의 기독교 관련 신흥종교운동들에 관한 연구에 그의 비상한 관심을 집중하게 되고, 그 교리적 이단성을 밝히는 활동에 많은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 시기에 탁명환 소장은 소위 기독교의 정통적 교리와 신앙생활규범에서 벗어나는 신흥종교운동들의 활동에 주목하고 그들의 이단적 교리를 밝히는 한편, 반사회적이고 범죄적일 경우에는 그 종교적 사법적 대응을 신속히 진행했다.

탁명환 소장은 그가 숨지기 한 달 전인 1994년 초에 작성한 그의 새해 인사 편지에서, “하나님께서 언제까지 부족한 저를 쓰시려는지 알 수 없으나 사명 다 할 때까지 이 생명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라고 지인들에게 고백했다. 순간순간을 마지막으로 생각하며 격동의 한국현대사를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살았던 종교문제연구가 탁명환 소장은 1994년 2월 19일 새벽 0시 10분 괴한의 피습을 받고 하나님 품에 안겼다. 
 

최삼경 목사의 추모사 

탁명환 소장님께 드립니다. 
탁 소장님! 소장님이 천국에 가신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5년이나 흘렀군요.

제가 여동생이 박옥수 이단에 빠져 박 씨와 공청회를 하기로 한 1984년 말에 소장님을 처음 만났죠. 그 후 85년 1월부터 87년 12월까지 3년간 현대종교에 매달 글을 쓰게 해 주셨고, 전국을 누비며 함께 집회도 하고, 이단연구를 하시며 겪은 그 숱한 아픈 이야기들로 나누며 밤을 새우기도 하고, 신세한탄도 하며 같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였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군요. 유달리 헛 기침을 많이 하셨던 그 기침 소기가 제 귀에 들려오는 시간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 때 소장님을 만난 것이 인간적으로 후회스럽기도 합니다. 소장님만 만나지 않았다면 저도 이렇게 힘든 이단연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지난 35년 동안 겪은 그 숱한 아픔들을 필설로 다 설명할 수 없이 크지만, 살아 생전에 소장님께서 “사명자는 자신의 사명을 다 하기 전에 죽지 않는다”고 자주 말씀하셨던 그 말씀이 오늘따라 제 가슴 속에 솟아오르는 군요.

소장님은 이 땅에서 사명을 다 하셨기에, 하나님께서 부르시어 저 천국에서 쉬고 계시지만, 저희들은 아직도 해야 할 사명이 남아 피터지게 싸우고 있습니다. 무지한 이단들과 싸우고, 지겨운 고소들과 싸우고, 이단은 물론 이단에 편승하는 정치꾼들 내지 연합기구들과, 이단보다 더 악한 이단옹호자와 이단 옹호언론들, 그리고 한국교회 무관심과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이제 이단 문제는 교회 밖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안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런 한국교회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소장님처럼 한국교회를 조금이라도 살리기 위하여 겸손하게 눈물로 기도하며 싸우고 싸워, 하나님의 부름이 있을 때까지 소장님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도 소장님처럼 승리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고백이 우리 고백되기를 바라며 추모사를 대신하겠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장운철 기자 kofkings@hanmail.net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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