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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 시대 망대 발견

기사승인 2019.06.27  13: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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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블레셋 경계 파수대 역할

<교회와신앙> 김정언 기자】   히스기야 왕 시대였던 주전(BC) 8세기쯤의 망대 유적이 이스라엘 낙하산 부대에 의하여 최근 발굴됐다.
가로 약5m, 세로 3.5m, 17.5 제곱미터 규모로, 다듬은 네모난 큰 돌로 만들어진 장방형 구조의 파수대다. 현재 남은 폐허의 높이는 약2m, 가장 큰 돌의 무게는 약 8톤.

부대원들이 우연히 언덕 위에서 발견한 이 망대의 지리적 위치는 고대의 헤브론 산, 유대 평원, 아스글론 등이 내려다보인 고지대로,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에 인접한 적이었던 블레셋 군대를 막기 위한 전략 요충지. 현재도 이스라엘 남부 군기지에 속한 땅이다.

   
  이스라엘 낙하산부대가 우연히 발견하여 발굴해낸 고대 히스기야 왕 시대의 망대

이스라엘 사적국(IAA)은 "제1성전 시대 후기에 유다 왕국이 망대와 요새 여러 개를 소통과 경고, 신호와 탐지 목적으로 건립했었다"고 발표했다. 이 망대는 현재의 베이트 미르심(미르샴), 텔 에톤(에돈), 텔 라키쉬(라기스) 등 부근의 대도시들과 연계해주는 전망 포인트의 하나였다.

당시의 신호는 연기와 불 등이었다. 히스기야 군대는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열왕기하 18:8)을 정도로 강력했으나, 앗수르(아씨리아) 군대 앞에는 한동안 무력해지기도 했다. 당시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멸망했다.

고고학 연구팀은 이 파수대가 지금부터 약2700년전인 주전 701년, 앗수르 왕 산헤립의 군대가 침략했을 당시 내버려진 망대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산헤립은 705-681년에 다스린 고대 아씨리아의 장군 출신 군왕(軍王)이었다. 당시 이 망대의 입구는 봉쇄되고 파수병들은 퇴각했다.

산헤립은 이스라엘에 이어 유다를 침공했을 때, 자신이 46개 도시와 2000개의 농장 및 마을을 파괴했다고 선언한 서신을 보내어, 특히 유다 왕국을 겁 주고 압박하려 했다. 산헤립의 앗수르 군대는 장기간 예루살렘을 포위했으나 하나님을 의지한 히스기야와 시민들의 용맹과 의지에 막혀 함락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 파수대 발굴은 사적국과 이스라엘 자연공원국(INPA) 주도 아래, 이스라엘자연보호협회(SPNI), 이스라엘 국방부와 국군이 공동으로 진행했고, 낙하산 부대원 150여명이 여러 달동안 참가했다.

군이 발굴에 참여한 의도는 아도나이(여호와 하나님)께서 주신 이스라엘 유산 및 자연 경관에 대한 관심을 북돋기 위해서. 아울러 군인들은 고대의 동료 유다 병사들과의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이 발굴은 이스라엘 기술유지군(TMC)이 주도하는 '자연국방프로젝트-주변환경에 대한 부대장들의 책임(TNDFPCTRE)'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이 프로젝트는 2014년 8개의 프로젝트로 시작, 현재 전국에 60개 실행센터를 두고 있다.

발굴엔 처음 참가한다는 낙하산부대 정찰대대 신병 훈련대장, 로이 오피르 소위(21)는 "고고학 발굴은 이제 나의 일상 휴식의 일부다"면서 "장병들은 이런 수작업을 즐기고 특별한 가치를 둔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우리 영토와의 연계감, 고대의 선배 (유다) 전사들의 역사적 사실이 어떤 사명감을 준다"면서 "현재 우리가 바로 국방임무를 다하고 있는 지역이어서 더구나 그렇다"고 덧붙였다.

김정언 기자 skm01_@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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