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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시대의 교육 패러다임 ‘統一’에서 ‘通一’로!

기사승인 2019.08.28  16: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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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의용 교수의 통일 논단

통일교육위원 서울협의회(회장:유지수 국민대 총장)는 8월27일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전문가포럼 & 열린통일강좌를 개최했다. ‘통일의 해법, 통일교육위원에게 듣는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강좌에서는 박병직 한국관광개발공사 관광인력개발원 교수와 이의용 국민대 교수가 각각 ‘한반도 평화관광과 통일한국의 미래’, ‘통일시대의 교육 패러다임’을 주제로 발표를 했으며 정한범 국방대학교 교수와 김희선 국민대학교 교수가 지정토론을 했다. 이날 포럼에서 이의용 교수는 통일시대의 교육 패러다임을 ‘統一’에서 ‘通一’로 바꿔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의용 교수의 발제문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이의용 / 통일교육위원, 국민대 교수

   
▲이의용 교수 

 어떤 예고편
얼마 전 탈북자 모자(母子)가 사망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42세 어머니와 6살 아들이었는데 아사(餓死)로 추정된다고 했다. 너무도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18 북한이탈주민정책 실태조사‘ 같은 자료를 살펴보면 북한이탈주민들의 남한에서의 삶은 퍽 고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학에서 탈북학생을 살펴봐도 비슷하다. 대부분 자신을 탈북민으로 밝히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경제적인 궁핍함과 함께 소외감이다. 이 두 가지는 사실상 매우 밀접하다. 남한에 협력해줄 사람이 없으니 경제활동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남한과 북한이 하나가 되어 살 때의 예고편을 보는 것 같다.

 통일은 결혼
한자어 ‘統’은 ‘거느리다’, ‘합치다’의 뜻을 갖고 있다. 퍽 권위주의적이고 정치적이고 억압적인 느낌을 준다. 대통령의 ‘통’자가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같은 이유다. ‘統一’의 사전적 의미는 ‘나누어진 것들을 합쳐서 하나의 조직ㆍ체계 아래로 모이게 함’이다. 우리의 소원 ‘통일’은 말 그대로 이질적인 남한과 이질적인 북한 사람들이 하나의 조직 · 체계 아래 모여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아 보인다.

   
▲ 지난 8월 27일 통일교욱위원 서울협의회 주관 '통일의 해법, 통일교육위원에게 듣는다' 주제의 강좌가 진행됐다

통일을 혼인에 비유해본다. 부부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다. 결혼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다름을 지워버리고 똑같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 ‘다름’을 지키고 존중하면서 연합(聯合)하는 것이다. 결혼은 연합이지 통합이나 통일이 아니다. 부부라고 해서 똑같이 자장면 시켜먹어야 하는 게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성(性)을 유지하고 존중하며 협력하는 것이 결혼이다. 어느 한 성이 다른 성을 지배하려 할 때 연합은 깨진다. 그래서 결혼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다. 결혼에서 중요한 것은 부부임을 증명하는 가족 증명서가 아니라 두 사람의 현실적인 삶이다.

남북 통일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쪽에서 대통령이 되어 권력을 잡아 상대방을 자기 통치 하에 두느냐가 아니라, 상대방의 이질성을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느냐다. 필자는 거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 소통 능력이라고 본다. 남북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의 소통능력을 갖추고 있을 때 ‘다름’을 인정하며 극복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할 때 ‘統一’은 남북 모두에게 ‘痛一’이나 ‘痛日’이 될 수 있다. 어느 북한이탈 주민 모자의 죽음처럼. 지금 남북 모두 그런 준비가 되어 있는가?

 통일 시대의 교육 패러다임-1. 더불어 살기
아프리카 구호활동 전문가로 잘 알려진 어느 분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방학이 되면 세계 각국 청소년들과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합니다. 나라별로 팀을 짜서 잡초를 뽑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런 장면을 자주 접합니다. 풀을 뽑는 작업을 마친 후 다들 숙소로 돌아가는데 나중에 남아 있다가 절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말로 묻습니다. ‘선생님, 어느 팀이 제일 많이 뽑았어요? 우리 팀은 몇 등쯤 되나요?’” 우리나라 경쟁교육의 폐해를 잘 설명해주는 이야기다.

삶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다. 삶 자체가 경쟁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경쟁의 기준이 공정하지 않을 때, 또 그 결과가 모든 걸 좌우하게 될 때 그 사회에는 아픔이 올 수밖에 없다. 더불어 사는 문화가 없는 사회에서 경쟁이 모든 걸 지배하면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그다지 공정하지도 않은 획일적인 기준으로, 모든 걸 경쟁시켜 승자가 모든 걸 다 차지하는 건 군인들의 전쟁문화이다. 이런 문화에 과연 북한 주민들이 적응할 수 있을까? 또 북한 주민들의 문화에 우리는 적응할 수 있을까?

지나치게 경쟁심을 부추기는 교육문화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지금도 ‘스카이 캐슬’에서와 같은 편법 교육으로 스카이 대학에 진학해 부모의 부와 권력을 그대로 세습받은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을 얼마나 무시하고 통치하고 있는가. 잔인하기 짝이 없는 상대평가 제도부터 퇴출시켜야 한다. 독서실에 머리 박고 혼자 암기하며 공부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런 학습방식은 이제 우리 교육에서 영원히 퇴출해야 한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과 지식을 공유하며 협력하는 역량이 더 중요한 시대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5년마다 기업 인재상을 조사하여 발표한다. 2018년 조사결과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 1위는 ‘소통·협력’이다. 통일의 시대도, 경쟁이 치열한 기업도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능력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왜 학교만 상대평가에 매달리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대학 진학생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니 이참에 중등학교부터 경쟁을 부추기는 상대평가를 줄이고 패스-넌패스를 늘리면 좋겠다. 남을 무조건 경쟁의 대상으로 보는 인재가 많은 사회보다, 남을 협력과 배려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가 사회적 비용이 훨씬 덜 들 것이 뻔하다. 공부만 잘 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보다 더불어 사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더 좋은 사회 아닌가.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교육 패러다임 첫 번째는 더불어 사는 능력이다. “I’m OK, You’re OK!”

 통일 시대의 교육 패러다임-2. 소통하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간 비교에서 우리나라는 사회갈등이 가장 심하지만, 갈등해결 시스템이 가장 취약한 나라로 평가된다. 갈등은 앞에서 2, 3위인데 해결은 끝에서 3, 4위다. 민주화가 시작된 지난 20 여 년 동안 개인 및 집단 간, 세대 간, 진보와 보수 간, 노사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 간, 남녀 간, 종교 집단 간 갈등 등 다중 복합적인 갈등이 날마다 계속 되고 있다. 문제는 갈등 당사자들의 갈등 해결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갈등을 해결해줄 주체가 마땅히 없다는 점이다.

사실 사회 갈등을 찾아 예방해주고 해결해주는 것이 언론과 정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언론과 정치가 오히려 사회 갈등을 만드는 주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할 수 없는 수준 이하의 가짜 뉴스가 이처럼 범람한 적이 없다. 정치인들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논리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막말을 배설하며 날마다 싸운다. 한 마디로 ‘말이 통하지 않는 불통 사회’

그동안 독재정치 하에서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억압되어 살아온 후유증일 수도 있고, 미디어의 증가와 발전으로 자기의사표현 창구가 갑자기 늘어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잘못된 국어 교육에 있다고 본다. 국어교육의 기본 틀은 ‘말하기-듣기, 쓰기-읽기’다. 공교육이 국어나 영어를 가르치는 건 소통을 잘 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특히 국어 교육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통 잘 하려고 국어, 영어를 공부하는 청소년들은 거의 없다. 다들 시험 잘 보려고 공부를 한다. 공정한 평가가 어려우니 말하기, 쓰기는 생략하고 듣기, 읽기만 가르치고 평가한다. 표현은 안 가르치고 이해만 가르치는 반쪽 교육이다. 야구로 말하면 공격 방법은 안 가르치고 수비 방법만 가르친다. 많은 청소년들이 말하지 않고 쓰지 않고, 듣고 읽은 후 암기해서 필기시험 보고 대학엘 간다. 남의 생각만 듣고 읽으니 자기 생각이 생길 수가 없다. 사색은 하지 않고 검색만 하게 하는 교육, 이것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손실인가?

국어 교육이 잘못되니 논리력, 사고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논리력이 있는 사람은 주장을 할 때 상대방이 납득이 가게끔 한다. 반박도 논리적으로 한다. 합리적이면 상대방 주장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렇게 차이를 조정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주장에는 논리가 없는 경우가 많아 토론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큰 목소리로 우기거나 행동으로 표현을 하며 싸운다.

상대방 말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청문회가 좋은 예다. 청문회는 영어로 ‘Hearing’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묻기만 하고 대답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신문 기사도 마찬가지다. ‘외워서 정치하고 외워서 기사 쓴다’는 말 그대로다.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이 오히려 소통을 막고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이런 현상을 보면, 통일 시대에 우리가 북한 주민들과 어떻게 토의하고 토론하고 협상을 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난감해진다. 현재 이런 수준의 소통 역량으로 통일이 된다면 통일은 ‘痛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더 행복한 나라를 이루고, 나아가 통일 시대를 준비하려면 지금이라도 소통 교육, 다시 말해 국어 교육을 바로 잡아야 한다. 소통은 삶이다. 전기제품은 전선으로 연결되지만, 사람은 시선으로 연결된다. 소통은 나와는 다른 사람과 소통의 끈을 연결하고 서로 다른 점을 표현하고 이해하면서 조정해나가는 삶의 기술이다. 다른 사람과 서로 다른 의견을 표현하고 토론을 거쳐 조정하는 기본적인 소통 교육을 살려야 개인이 행복해지고 갈등을 줄이고 해결해나갈 수 있다. 독서실에 가서 연필 들고 국어를 공부하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모든 학교가 일방적인 강의부터 대폭 줄여야 한다. 학습자가 말하게 해야 한다. 학습자가 교수자에게 당돌하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교수자가 아는 걸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학습자가 알고 싶은 걸 가르쳐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소통을 배울 수 있다.

 통일의 열쇠-소통과 협력
우리가 기대하는 통일은 힘 센 세력이 약한 세력을 흡수하여 소유하고 통치하는 M&A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런 ‘統一’은 다른 어느 한 쪽에는 ‘痛一’이 될 수밖에 없다. 다름을 존중하고 차이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소통 공동체로 ‘通一’이 돼야 한다. 그러자면 초중등 교육 뿐 아니라, 대학 교육도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크게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통일의 열쇠는 교육에 달렸다.

통일된 하나의 국가 만들기 그 자체가 아니라, 남북한 민족 모두의 더 행복한 삶이 통일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과연 북한 주민들이 와서 함께 살고 싶은 사회인가? 또 그럴 수 있는 사회인가?

이의용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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