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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하나님

기사승인 2020.06.30  13: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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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하 박사의 구약 이야기(5)

김병하 박사 / 연세대, 총신대학원, 영국 쉐필드대학교 구약학 Ph.D, 영국 Manchester International Christian College(University of London) 교수 역임, Leeds Korean Church 담임, 저서 ‘희년 사상의 영성화

   
▲ 김병하 박사

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된 선한 세계는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해서 뒤틀리고 왜곡된 세상이 되어버렸다. ‘자기주장’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상실해버렸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그 인간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존재들이 되었지만 본질이 사랑이신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금 사랑의 대상으로 회복하시기 위해서 찾아오신다.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그분의 세계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주신다. 그리고 뒤틀어지고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시려는 영원한 계획인 구속사를 수행하시게 된다.

아브람을 찾아오신 하나님

성경의 원 역사는 타락한 인간들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기록해주고 있다. 그런 뒤에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아브라함(아브람)을 찾아오시는 모습을 창세기 12장은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사를 위해 특별히 택함을 받은 아브라함은 75세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는다(4절). 아브람을 찾아오셔서 약속의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창세기 기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1-3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아브람을 찾아오셔서 친히 하나님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시며 하나님 자신의 이름으로 축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3대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 모두로부터 존경받는 믿음의 사람이다. 그는 노아의 10대손이며 데라의 아들들 중에서 막내로 태어났다(창 11:10-26). 그가 태어난 갈대아 우르는 여러 가지 신들을 열정적으로 숭배하는 다신교 지역이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된 민족을 세우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갈대아(메소포타미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을 거쳐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다. 구약 이스라엘의 첫 족장이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구원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창세기 기자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구원사를 이끌어 가시는지에 대해서 소상하게 기술하고 있다(창 11:26-25:11). 신약성경은 아브라함을 구약의 인물 중에서 모세 다음으로 많이 인용하고 있으며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며 모든 믿는 이들의 믿음의 조상으로 언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축복의 약속에 대한 표징을 주시는 하나님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람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 뒤에 아브람을 다시 찾아오신다. 창세기 기자는 15장에서 “…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1절)라고 기술하고 있다. 인간 존재의 차원으로 낮아지셔서 찾아오신 하나님의 모습과 소통을 위해서 인간의 문화를 사용하셔서 하나님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계시로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두 가지 약속을 주신다. 첫째는 아브람의 몸에서 날 자가 그의 상속자가 될 것(4절)이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지금 머물고 있는 땅을 아브람의 소유로 주시겠다고 하는 것이었다(7절). 아브람은 자손에 대해서 주신 약속을 믿었고 여호와께서는 그런 아브람을 의롭게 여기신다(6절). 그런데 땅에 대한 약속에 대해서는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7절)라고 하며 아브람은 표징을 구한다.

표징을 구하는 아브람에게 여호와께서는 제물을 준비하라고 하신다: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9절). 말씀에 순종하여 제물을 준비한 아브람에게 약속의 후손들이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신다(12-16절). 이는 앞일에 대한 주술적인 예언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해 세워진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경륜을 아브람에게 알려주신 것이다.

여호와와 아브람의 언약 체결식

아브람에게 자손과 땅에 대한 약속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식을 가지신다. 이 언약식의 모습을 창세기 기자는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17절)고 기술하고 있다. 쪼개어져 있는 제물 사이로 지난 것은 횃불이었다는 것이다. 쪼갠 제물을 앞에 놓고 양편 당사자들이 계약(약속)을 하는 것은 당시 고대 중동 지역의 관습이었다. 설형문자로 쓰여진 고대 토판들의 기록들은 약속을 맺는 두 당사자가 쪼개어 놓은 제물 사이를 함께 걸어가면서 계약(약속)을 맺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만약에 어느 한쪽이 약속을 어길 경우에는 잡아서 몸을 쪼개어 놓은 제물들과 같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엄중한 경고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예식이었다. 쪼개어 놓은 제물들 사이를 두 언약 당사자들이 나란히 걸어가면서 서로 맺은 계약(약속)을 죽음을 담보하고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예식이었던 것이다. 인간 존재의 차원으로 낮아지셔서 찾아오신 하나님이 아브람과의 소통을 위해서 당시의 문화를 사용해서 언약을 맺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를 볼 수 있다.

쪼갠 제물 사이로 지나간 횃불

고대 중동의 관례에 따르면 하나님과 아브람이 쪼갠 제물 사이로 함께 지나가면서 둘 사이에 언약을 체결했어야만 했다. 그런데 쪼개어 놓은 제물 사이로 지나간 것은 횃불이었다(17절).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종종 불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쪼갠 제물 사이로 지나간 횃불은 여호와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약의 다른 한 편 당사자인 아브람은 제물 사이를 지나가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람과 맺은 이 언약 체결식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크다. 이 언약 체결식에서 하나님은 ‘내가 아브람 너와 맺는 언약은 전적으로 내가 책임질 것이다’라는 의미를 보여주시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브람 너를 잘 알고 있다. 너는 진토이고 쉬이 변하며 연약하다는 것을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너와 나 사이에 맺는 이 언약의 보증인은 바로 나 여호와가 될 것이고 그 언약의 파기에 대한 책임도 전적으로 내가 지겠다’고 하시는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과 신실함을 보여주고 있는 언약 체결식이었던 것이다.

아브람과 맺은 언약식이 주는 교훈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이후에도 하나님 당신의 인격을 친히 불어 넣어 만드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셨다. 하나님의 인격을 불어 넣으셔서 만드신 인간을 다시 회복하시고 온 우주의 회복을 이루어내시는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회복의 구원 역사를 인간을 친히 찾아오셔서 잃어버린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대해서 알려주시는 계시를 통해서 그리고 구원사의 주된 대상인 인간과 맺으신 언약의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나가시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구원 받을 아무런 자격이 없는 인간에게 다시금 찾아오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이 사랑의 하나님은 친히 계획하신 구원사를 그분의 성실하심으로 이루어 나가고 계신다. 인간을 찾아오셔서 인간 삶의 본질을 깨닫게 해주시고 다시금 회복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세대를 이어 회복해 나가시기 위해서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의 궁극적인 책임을 지는 주체로서 우리 앞에 계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시며 우리의 삶을 책임져주실 신실한 하나님의 모습이 바로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연약함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할지라도, 끝까지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우리를 인도해 나가시겠다고 하는 하나님 스스로의 다짐이 이 아브람과 맺은 언약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태초로부터 아브라함 때까지 맺어진 언약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책임을 지시는 일방적인 계약의 특성(unilateral)이 있고, 모세 이후의 언약은 인간 편에서도 율법에 순종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bilateral)고들 주장한다. 그러나 구약 이스라엘 역사는 야웨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인도와 사랑과 보호에 대한 반대 급부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무엇인가를 해드림으로써 그 언약이 성사되는 것이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한편 주체로서의 인간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켜본 적이 없음을 구약 이스라엘 역사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만이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언약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근본적인 동력이었음을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는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도 우리들의 삶의 경험들을 통해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고백적으로 증언하게 된다.

이 언약의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심겨진 그 언약적 사랑의 씨앗이 우리 삶속에서 잘 자라나서 장성한 나무가 되도록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연약해도 아브람과의 언약식에서 쪼개 제물 사이를 홀로 지나가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도와주시고 인도해주시므로 언약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실 것이다. 언약을 책임져주실 주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다.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능력으로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들을 아름답게 살아내어 언약의 주님께 커다란 영광을 돌려드리는 우리들의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김병하 박사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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