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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 행가래] 왜 장례라 부르는가?

기사승인 2020.11.16  11: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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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 목사 /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 청란교회 담임

   
▲ 송길원 목사

국민소득 1만 불까지는 ‘성실’이다. 2만 불까지는 ‘기술’이고 3만 불까지는 ‘문화’다. 4만 불부터는 ‘품격’이다. 품격은 ‘의례’(儀禮, ritual)로 표현된다. 배철현 교수는 ‘세수(洗手)’를 하루를 시작하는 의례라 부른다.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어젯밤 죽었던 몸, 정신 그리고 영혼을 일깨우는 의식을 거행한다. 세수하지 않는 날은, 오늘이 아니라 어제다. 만일 내가 누구를 만날 일이 없어, 하루 종일 집안에서 지낸다 할지라도, 세수를 생략하면, 나는 그 하루를 새롭게 시작할 수 없다. 세수는 신기하게 단순히 손과 얼굴을 닦는 행위를 넘어, 오늘 하루를 새롭게 살겠다는 결심이다.”

세수(洗手) 또는 세면(洗面)이 하루를 시작하는 의례라면 세례(洗禮)는 일평생을 열어제치는 의례다. 가벼울 수 없다. 그래서 예(禮)가 된다. 혼례(婚禮)가 그렇다. 장례(葬禮)도 그렇다. 생일을 ‘탄례’(誕禮)라 하지 않는다. 결혼기념일도 회갑도 예(禮)로 지키지 않는다. 모두 반복된다. 회갑은 칠순과 팔순이 기다리고 있다. 장례는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절차도 까다롭다. 까다로울수록 그 속에는 정신과 의미가 새겨져 있다.

   
 

지난 11월 11일은 미국의 ‘재향군인의 날’이었다. 이날 재선에 실패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았다. 전몰장병을 기리기 위해서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헌화와 묵념을 하는 10여분, 대통령은 우산 없이 비를 맞았다. 누구도 우산을 씌어주지 않았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참석자들 모두 비를 맞고 서 있었다. 그게 사자(死者)에 대한 기본적 예(禮)다. 구령에 따라 경례를 한다. 펜스 부통령과 윌키 장관은 가슴에 손을 얹는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거수경례를 한다. 현역이고 국군통수권자여서다. ‘우아한 승복’을 거부한 채 떼를 쓰는 막무가내 터프가이 트럼프도 사자(死者) 앞에서의 격(格)과 예(禮)는 포기하지 않는다.

아일랜드에서는 집안의 모든 시계를 고인이 숨을 거둔 시간에 정지시킨다. 고인과 함께한다는 의미다. 루마니아에서는 유족과 이웃이 무덤까지 긴 행렬의 행진으로 함께 한다. 네덜란드는 고인의 사진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고인이 좋아했던 음악을 틀어준다. 지인과 가족들이 고인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시(詩)를 낭송한다. 대부분의 나라는 시신을 끌지 않는다. 어깨 위로 높이 든다. 신분과 상관없다. 한 생애에 대한 존엄함이다. 고인에 대한 존경심이다. 우리나라 상여가 그랬다.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런데 오늘날 장례는 장례(葬禮)가 아니다. 누구도 영정을 앞서 걸어서는 안 된다. 영국 여왕의 남편 에든버러 공작도 여왕의 반 보 뒤에서 걷는다. 걸음만이 아니다. 기념사진을 찍을 때도 여왕의 뒤로 자신의 몸을 약간 가린다. 여왕에 대한 배려를 넘어서 국가의 권위에 대한 시민의 예다. 언제부터인지 혼례(婚禮)를 결혼식으로 부르며 혼례가 한없이 추해졌다. 주례자도 거부한다. 이러다가 ‘셀프 세례(洗禮)’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앞서 배 교수는 세수하지 않은 용모로 누구를 만나는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실례’일 뿐만 아니라 ‘범죄’라고 일갈(一喝)했다. 혹 우리의 장례가 깡패짓은 아닐까? 추모는커녕 범죄자는 되지 말자.

장례는 그 집안의 마지막 품격이다.

송길원 목사 happyhome10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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