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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때(말세)를 사는 지혜

기사승인 2021.05.10  14: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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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총균 목사의 논단

오총균 목사/ 특화목회연구원장. 시흥성광교회 담임
 

   
오총균 목사

1. 서론

바울은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를 것이라 예언했다(딤후3:1). 베드로는 이 고통의 원인에 대하여 ‘패역(悖逆-moral delinquency)’이란 말로 표현했다(행2:40).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에서 벗어나 순리를 역행한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사랑 부재(不在)와 각종 재난과 기근, 그리고 ‘전염병’의 성행이 말세에 나타날 것을 말씀했다(눅21:10-11). 정의와 진리의 왜곡으로 인해 고통이 심화될 것이라 예고했다. 어떤 학자는 사회적 위기가 「집단적 타락 증후군」에서 온다고 보았다. 거짓이 바른 행위로 미화되는 일이 집단지성(集團知性)의 흐름을 타고 횡행한다는 것이다. 실제 오늘날에는 질서가 파괴되고 타락과 무법(無法)이 판치는 모습이 난무하다. 거짓을 말하고도 거짓이 아니라고 우기고, 불법을 행하고도 불법이 아니라고 우긴다. 잘못을 하고도 그 행위를 부인(否認)하며 잘못을 정당화하기에 급급하다. 사회 지도층이 저지르는 부정(不淨) 행위를 보고 사람들은 자신의 부정(不正) 행위를 합리화하게 된다. 집단적 양심의 마비로 개인적 바른 양심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가치관이 완전히 붕괴되면서 정상에서 이탈하여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변모해 버렸다(롬1:25). 이로써 세상 사람 모두가 ‘고통하는 때’를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2. 양심의 개념 이해

   
 

양심(良心)이란 “선량한 마음”을 의미한다. 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양심은 어떤 행동의 도덕적 특성에 관해 직관적으로 권위 있는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이해됐다. 그리하여 고대인들(이집트)은 양심의 명령을 어기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왜냐하면 사람은 양심의 인도(引導)에서 벗어나면 반드시 ‘두려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몇몇 종교적 신앙에서 양심(良心)을 신의 목소리로 이해했고, 이 양심의 소리를 신뢰할 만한 행동지침으로 여겼다. 종교적 맥락 이외에도 철학자·사회과학자·심리학자들은 개인적 측면과 보편적 측면에서 양심을 이해했다. 양심을 옳고 그름에 대한 지각을 결정하는 타고난 직관력이라고 보는 견해를 직관주의(直觀主義)라 부른다. 그리고 양심을 미래 행위를 유발하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누적된 주관적 추론이라고 보는 견해가 경험주의(經驗主義)이다. 한편 행동주의(行動主義) 학자들은 양심을 특정 사회적 자극에 대한 일련의 학습된 반응으로 보았다. 이 양심(良心)을 저버릴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고, 누군가가 양심을 저버리는 행위를 할 때,양심이 없다. 혹은 양심을 속인다. 아니면 양심이 화인 맞았다.”는 말을 쓰게 된다.
 

3. 기독교의 양심 분석

기독교에서 양심(良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하고 착한 마음’을 뜻한다. 종교 개혁자 루터는 양심을 통해 ‘이신칭의(以信稱義-justification by faith)’를 착안해 냈다. 루터가 말하는 기독교는 양심(良心)의 종교였다. 그것은 , 죄책감, 성경과 말씀의 순종은 모두 양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루터는 양심에 거리끼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고백함으로써, 사람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었다. 종교 개혁자 칼빈은 양심을 기독교인의 자유 개념 안에서 이해했다. 그는 양심이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선다고 보았다. 양심(良心문화어)은 선악을 판단하고 을 명령하며 을 물리치는 도덕 의식이다. 예장 통합교단 헌법 제2편 정치 제1장(원리) 제1조에서 ‘양심의 자유’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양심을 주재하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다. 그가 개인에게 양심의 자유를 주어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성경에 위반하거나 지나친 교훈이나 명령을 받지 않게 하였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신앙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그 양심대로 할 권리가 있으니 아무도 남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 양심은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이다. ‘양심의 자유’를 소유하게 되면 어떤 비난을 받거나 옥중에 매이더라도 그 환경으로부터 자유하게 된다(딤후2:9).
 

4. 맹자의 양심 이론

인간의 본성을 연구한 맹자(孟子)는 마치 인간이 두 손과 두 발을 지니는 것처럼 사단(四端)의 본연지성(本然知性)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첫째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이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둘째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다. 이는 의롭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기고, 잘못됨과 의롭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다. 셋째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이다. 겸손하여 양보하고 남에게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이다. 넷째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줄 아는 마음이다. 이상의 사단(四端) 가운데 두 번째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자기가 행하거나 행하게 되는 일, 특히 ‘나쁜 행위’를 비판하고 반성하는 의식을 말한다. 양심의 가책이나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자신을 관리하고 지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관능적 욕망과 생의 충동이 일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 본성 때문에 이 본성이 자라나고 충만하면 서로 쟁투(爭鬪)하는 투쟁이 일어난다. 이 때 사람은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혀 양심을 저버린다. 이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고 도덕적 질서가 파괴된다. 맹자에 의하면 그러하더라도 불의를 행하고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비양심적인 사람은 인간(人間)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5. 파괴된 양심의 실태

인간사에 있어서 힘과 권력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을 타락시킨다. 사람을 타락시키고 비도덕화하는 모든 원인들 중, 힘과 권력처럼 부단하고 가장 활동적인 것도 없다. 로버트 미헬스(Robert Michels)는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처음에는 권력을 사용하고 싶어하고, 그 다음에는 그것을 남용하고 싶어한다고 지적했다. 사람이 대의실현(大義實現)을 위해 도덕적 면허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필요악도 정당화하고 도덕적 일탈도 양심을 저버리며 감행한다. 바바라 터크만(Barbara W. Tuchman)에 의하면 성공한 혁명이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히면 상대를 비도덕자들로 몰아 비난하고 단죄하며 폭력을 정당화하며 죽이는 것도 용인하게 된다. 실제 중국 마오쩌둥(Mao Zedong)의 홍위병은 도덕과 정의를 실현한다며 국가를 개조한다는 미명 하에 수많은 사람을 재판없이 죽였다. 나치즘(Nazism)의 독일인은 유대인 수백만을 죽이면서 인간쓰레기를 소각한다고 여겼다. 파괴된 양심이 집단지성을 업고 활동하면 권력남용으로 인한 극악무도(極惡無道)한 타락행위가 거침없이 행해진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타락된 양심에 오염될 수 있는지를 역사(歷史)는 보여준다. 선량한 양심도 타락된 집단지성에 의해 지배받으면 양심을 지키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6. 결론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적 기준이 법(法) 속에 내포되어 있다. 법을 어기는 행위를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그 마음속에 정의감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을 지녔다는 증거이다. 이 마음이 있어 양심을 지키고 의(義)를 세운다(신16:20,잠21:15,사1:17,요7:24). 현 시대적 고통은 법을 어기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위장 탈법 행위를 진실처럼 가장(假裝)하는 자들로 인해 기인한다(호9:15).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사32:17,겔36:32). 무릇 정치(政治)는 법을 어기는 일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양심적인 사람이 주도해야 한다. ‘학우등사 섭직종정(學優登仕 攝職從政)’이란 말이 있다. 덕성을 갖추고 배움이 넉넉한 뛰어난 자가 그 배운 바를 바르게 펼치기 위해 벼슬로 나아가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으로 정사(政事)에 참여함을 뜻한다. 세속 대중에 영합하는 자가 직위에 오르기 유리하다는 민주주의(民主主義)의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정의롭게 법을 집행함에 최소한의 양심을 지킬 사람이 국가나 사회 각층의 지도자가 돼야 한다. 빗나간 양심이 양심적 집단지성에 의해 지배받는 사회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현재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고통의 때를 사는 지혜인 것이다.

오총균 목사 skoh11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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