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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의 언어의 영성(1)

기사승인 2021.07.26  11: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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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동섭 교수의 선교 논단

방동섭 교수/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진짜 믿음인가 거짓 믿음인가?

야고보서는 베드로전후서, 요한 1,2,3서, 유다서와 함께 ‘공동서신’이라고 하는데 ‘공동서신’은 특정한 수신자가 없다는 뜻이다. 야고보서를 기록한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우선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야고보가 있다. 그러나 야고보서의 기록 연대는 AD 62년경으로 그가 기록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AD 44년 경 헤롯에 의하여 순교를 당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가 있다. 요 7:5에 보면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했기 때문에 그도 야고보서를 기록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야고보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만나게 되었고(고전 15:7), 그 것을 계기로 회개하게 되었고 이 서신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루터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straw) 서신'이라고 불렀다. ‘가치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서신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보다는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서신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목적이다. 다시 말하면 ’그 사람이 구원을 얻었는지 아닌지는 그의 삶이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서신은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서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내 믿음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기를 원한다면 야고보서를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다.
 

신앙인의 정체성은 위기 때에 나타난다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한다”고 하였다(약 1:1). 여기 '흩어지다'는 단어는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ά)인데 ‘~를 통하여’라는 뜻의 전치사 ‘디아’(δια)와 ‘퍼지게 하다‘는 뜻의 동사 ’스페이로’(σπείρω)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문자적으로는 '넓게 퍼지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 단어가 여러 나라에 퍼져있는 유대인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후에는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기독교인'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들은 로마제국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핍박을 당하게 되었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순교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런 고난의 과정을 통해 거짓 신앙인은 점점 떨어져 나가고 진정한 믿음을 가진 제자들이 남게 되었는데 야고보서는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목적으로 이 서신을 보냈을 것이다.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는데(1:2) 기독교인들은 세상에 사는 동안 다양한 시험을 당하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신앙인은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어려운 시험을 당하게 될 때 그 정체성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가짜 신앙인은 어렵고 힘든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인‘은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온전히 기쁘게 여긴다'고 하였다. 최근 ‘코로나 위기’가 찾아오면서 교회 안에 ‘진정한 신앙인’과 ‘거짓 신앙인’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 같다. ‘진정한 신앙인’은 오히려 이런 때 더 신앙이 굳세어지고, 어떤 방식으로든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무너지지 않지만 거짓 신앙인들은 이런 때 원망과 불평의 노예가 되고 예배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
 

많이 선생 되지 말라

특히 야고보는 ‘진정한 신앙인’과 ‘거짓 신앙인’의 차이가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통해 나타나게 된다고 보고 있다. 야고보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였다(3:2). 여기 '실수하다'는 단어는 '프타이오'(πταίω)인데 '넘어지게 하다'(cause to stumble) 혹은 '죄를 짓게 하다'는 뜻이다. 다른 실수도 큰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신앙인에게는 '언어의 실수'는 단지 자신의 실수로 끝나지 않고 다른 형제들을 넘어지게 하거나 죄를 짓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그러기에 야고보 사도는 교회 안의 지도자들에게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 되지 말라"고 하였다(3:1).

'선생'은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는 지도자이다. 그는 주로 언어를 사용해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선생’뿐 아니라 이 시대의 언론인, 방송인, 변호사, 정치인들도 거의 말로 일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 신문이나 언론을 보면 가짜 기사가 너무 많이 떠돌고 있다. 언론이 거짓 기사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거짓말로 자신의 정치 생명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하는 말은 10%만 믿으라고 한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면 자신의 정치 생명은 유지될 수 있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지도자들의 언어는 무서운 것이기 때문에 야고보는 "많이 선생 되지 말라"고 권면한 것이다.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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