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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눈물

기사승인 2022.05.09  15: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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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좌 권사의 시

진주의 눈물
  

새해 들어선 지 엊그제 같은데
오월이 되고 어린이날이 지나고
내일은 어버이날이라네
요즘은 시간이 총알택시를 탄 것 같아

이 빠른 세월을 지금까지
함께하는 인연들이 있다
평탄하게 사는 사람은 내 글에
등장하는 일이 드물다

한 마디로 이슈거리가 있어야 글을 쓰는 거다
여러 차례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삶의 파도가 심한 사람이다

한 달 반 정도 전인가 핸드폰이 울려서
받았더니 다짜고짜로
큰일 났어요 한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했더니
나, 유방암이래요 한다
그리고는 구슬프게 운다

   
 

나 역시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 터라
억장이 무너지지만 짐짓
별일 아닌 것처럼
괜찮아 괜찮아
요즘 의학기술이 높아져서 그런 것
일도 아니니 걱정마라 했는데도
그녀의 울음은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한 참 울더니
무슨 유언처럼 말을 한다
의정부에 있는 집을 팔고
지금 사는 전세를 빼서
형님이 우리 딸 시집보내 주시고 ᆢ

듣다못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수술하고 나와서 나보다 훨씬 오래 살 거니까
그런 말 하지말라며 야단을 쳤다

나도 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런데 맞장구칠 수가 없다
그녀가 더 약해질까 봐

병원에 입원을 하는 날
그녀의 딸과 함께 갔다
다음 날 수술을 하고 실려 나오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문자야 수고했다 잘했어
하며 병실로 들어왔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집에 살지 않는 이상
알려지지 않은 일이 더욱 많음을 경험한다

일주일 입원하는 동안 pcr 검사 해가며 네 번쯤 병원을 들렀다

셋째 날인가 환자 몸이 조금 회복된 상태로
편하게 앉아 몰랐던 지난 날을
이야기한다

단 한 번도 돈을 벌어 봉투 한 번 쥐어 준 적 없는 남편이라는 사람과
이혼한 당시를 들려준다

전세 살던 집의 보증금을 모르게 빼가서
일주일 길에서 노숙을 했다는 일

숨 한 번 크게 못 쉬고 앉아서
미싱으로 품삯 일을 해서 겨우 의정부에 마련한 이십 평 대 아파트에서
대출을 집값 대비 거의 다 빼간 것 하며 ᆢ

         ***

그래서 대출 빚을 갚고자
살 집의 보증금을 벌기 위해
이십 년 가까이 휴일도 쉬지 못하고
친정집에 대소사가 있어도
가지 못했다 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형제들은 왜 안 오느냐고 원망을 하고
거의 발을 끊다시피 오해를 했다고

먹고 싶은 거 한 번 못 먹었다 한다
짜장면이 먹고 싶어도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며ᆢ
이제 빚도 다 갚고 조금 숨 돌릴 만하니

수술한 날 밤에 딸은 일 때문에
집에 가고 홀로 누워있으니

자신의 몸이 너무나 불쌍한 생각에
그래서 팔을 쓸어내리며
미안합니다
너무 부려먹어서 미안합니다
계속 쓸어내리며
소리 죽여 울었다 한다

옆 병실 침대에서 딸을 간호하던
엄마가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아침에 위로를 하더란다

살 수 있어요 걱정마세요 ᆢ

그 말을 듣고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 시작 하기 전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데

갑자기 그 심정이 마음에 닿아서 눈물이 났다

어떤 이름 모를 병사의
쓸쓸한 죽음을 보는 듯한
그렇다 그녀의 시간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의 퍼덕거림이었지만
죽은 시간이었던 거다

사람으로서 모든 것 포기하고
이 좋은 세상에 꽃구경 한 번 못해보고

그런데 이제 암이라니
얼마나 슬펐을까
지금도 이 글을 쓰는데 예배 때에 정서가 느껴져서 눈물이 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런 남편 이야기를 왜 안 했을까
내가 아는 만큼으로도 충분히 나쁜 사람이었는데
이 정도인 줄은 몰랐었다

형편이 안 되는데도 그녀는 인정이 있다
큰딸로서 동생들에게 뭔가 해주지 못해
너무나도 애석해 한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형편상
일찍 사회생활을 해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지금 오히려 동생들은 기반을 닦아
잘 살고 있다

그런데도 오히려 언니노릇 누나노릇 못한다며
속상해하고 미안해 한다

이야기 중에 오빠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친오빠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길래
비껴가는 인연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그녀는 그런 전 남편같은 사람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면 오빠라는 사람은 그 집안의 어떤 의미일까
모르겠다 말을 안 하니

이제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환자들은 때때로 롤러스케이트를 탄다
수술 후 예후가 좋다며 항암치료 안 해도 된다는 말에
얼마나 기뻐했는데
그래도 항암은 들어가야 한다네
지금은 덤덤하다
하나님이 살려주신 거라고
내 앞에서 말한다
그녀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그 날 밤 흘린 눈물은 ‘진주의 눈물’이다
귀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예쁘지 않은 꽃이 있을까
진실한 사람 그래도 사랑을 아는 그녀는
‘빛나는 진주’다 

 

 
▲ 이원좌 / 동숭교회 권사, 종로문학 신인상 수상, 시집 <시가 왜 거기서 나와> 등

이원좌 권사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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