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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시대의 철학, 스토아, 에피쿠로스, 플로티노스

기사승인 2022.06.14  1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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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철학 올레길과 둘레길 5

<교회와신앙> 이신성 기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세 시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그 철학자’라고 불리며 명성을 구가(謳歌)했지만, 고대 아테네에서는 그런 명성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사형당할 위기에 처했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후 아테네 시민들의 반마케도니아 정서 때문이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를 가르쳤고, 알렉산드로스는 기원 전 330년에 헬라제국을 일으켰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후 아테네 시민들은 마케도니아 출신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반란과 관련이 있다고 비난하며 죽이려 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순순히 사형당한 소크라테스와 달리 아테네로부터 탈출했다. ‘아테네가 철학에 두 번이나 죄를 짓지 않도록 한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변명은 유명하다.

   
▲  로마 아테네 지도, 위키 백과 갈무리

흔히 알렉산드로스의 사망(기원전 323)으로부터 이집트의 로마 제국 합병(기원전 30/31)까지의 시기를 헬레니즘(Hellenism)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그리스 철학은 로마에까지 전해지고 크게 발전한다. 헬레니즘 시대 이후에도 유행한 철학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스토아 철학, 에피쿠로스 철학,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 철학이다.

스토아 철학은 아테네에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로마의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까지 스토아 철학자가 될 정도로 로마 제국 전반에서 유행했다. 에피쿠로스 철학 역시 아테네에서부터 시작되어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결국 로마 제국 시대에는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 철학이 양대 산맥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다만 이 두 철학이 유물론(唯物論)적 경향을 띠고 있는 반면에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 철학은 관념론(觀念論)적 성향을 가졌다. 플로티누스는 북아프리카의 리코폴리스 출신이지만 로마에 학교를 세워 가르쳤다.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 철학은 물질과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는데, 그 중에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있다.

헬라 제국과 로마 제국 시대에 광범위하게 유행한 세 가지 철학들이 시작되고 펼쳐졌던 고대 아테네와 로마가 서양철학의 올레길과 둘레길 네 번째 코스이다.
 

◎ 스토아 철학 : 개별보다는 전체, 그리고 보편 법칙

   
▲  스토아(주랑), 픽사베이

기원전 300년 경에는 알렉산드로스가 건설한 헬라 제국으로 인해서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지중해 세계에서 정치적 주도권의 상실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을 가르치던 때에는 도시국가와 시민의 조화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시민들이 정치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토론을 하면서 도시국가의 운명을 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헬레니즘 시대, 즉 헬라 제국과 로마 제국에서는 거대해진 국가를 시민들이 다스리거나 정치에 참여하여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자체가 제한됐다. 로마의 공화정과 황제 중심의 제정의 정치 체제에서는 그리스 도시국가의 민주정은 더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개인이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적어지고 심지어 그런 권리를 잃어버리게 되자 결국 개인이 국가 권력으로부터 억압받고 피해를 입는 경우도 생겼다.

이러한 시대에 등장한 것이 바로 스토아 철학이다. <스토아>(Stoa)라는 말은 아테네에서 유행한 기둥식 건축물의 ‘주랑’(柱廊)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 당시 ‘울긋불긋한 강당’이란 뜻의 <스토아 포이킬레>에서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 제논(Zenon)이 강의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으로 불렸다고 설명한다. 제논은 키프로스 섬 출신인데, 한글 성경에서는 ‘구브로’로 번역된 곳이다. 제논으로부터 시작한 스토아 철학은 기원전 300년부터 기원후 180년까지 약 500년 동안 그리스와 로마 전역에서 유행하며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로는 키케로,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있다.

스토아 철학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과 공동체, 즉 시민과 국가의 관계 속에서 개인 시민보다는 국가 공동체의 입장에서 상황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도록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공동체, 전체의 관점에서 부분인 개인을 보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이전에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였다면, 이제 ‘인간은 우주의 법칙을 따라야 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즉, 인간은 이 세상 모든 것을 판단하고 정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일부분으로 철저하게 자연과 사회 질서를 따라야 하는 객체가 되어 버렸다.

보통 ‘전체는 개별들의 총합’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이 모여야 공동체가 되고 국가가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이 모여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이런 가정을 이룬 사람들의 총체가 바로 국가라고 이해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공동체와 국가를 이루는 개인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하지만 헬레니즘 시대에는 정반대의 주장이 제기됐다. 개인보다 공동체, 국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정이 없으면 개인이 생겨날 수도 없고, 국가가 없으면 국민, 시민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공동체의 운명을 책임지는 능동적인 주체로 여겨졌던 개인은 이제 국가의 통치를 받는 수동적인 구성원으로서만 존재하게 됐다.

스토아 철학은 바로 이런 점에 주목하며 개인의 삶은 전체 우주, 전체 국가가 온전할 때 온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은 철저하게 우주의 법칙과 국가의 질서를 따를 때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언제나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공동체 전체가 안정되고 그 안에 살고 있는 개인도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개인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사회적, 반국가적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데까지 나아간다. 따라서 사회, 국가, 우주의 일부분인 개인은 사회와 국가, 그리고 우주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해서 불만을 표현하면 안 되고 만족해야 된다.

   
▲  에픽테투스(좌), 아우렐리우스(우). 위키 백과

이와 함께 스토아 철학은 ‘모든 일은 영원 전부터 운명적으로 돌이킬 수 없이 결정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개인은 그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 때문에 스토아 철학을 숙명론(宿命論, necessitarianism) 혹은 운명론(運命論, fatalism)이라고 부른다.

스토아 철학이 유행하게 된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노예였던 에픽테투스와 로마 황제였던 아우렐리우스가 동일한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며 신분 차별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지키고 따라야 할 보편적 법칙(질서, 섭리)이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 에피쿠로스 철학 : 전체보다는 개인, 그리고 참된 쾌락

헬레니즘 시대에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 철학이 양대 산맥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그만큼 두 철학의 성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혹자는 “에피쿠로스 철학과 스토아 철학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에게 적대적”이었다고 평가했다(김상봉, <호모 에티쿠스>(현암사, 2006년), 136쪽).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스토아 철학은 개별보다는 전체를 중시했다.

이와 반대로 에피쿠로스 철학은 전체보다는 개인에 초점을 맞췄다. 개인이 우주의 질서를 바로 알고 따라야 하며 개인의 유익을 생각하지 말고 전체를 위해 헌신하고 복종할 것을 요구하는 스토아 철학과는 달리 에피쿠로스 철학은 세상의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자기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것을 권했다. 또한 개인이 전체를 바꿀 수 없기에 오히려 전체 세상으로부터 잠시 물러서고 떠나 사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며 은둔의 삶을 살 것을 장려했다. 이것이 스토아 철학자였던 키케로, 세네카, 아우렐리우스가 국가 정치 전면에 나섰던 것과는 달리 에피쿠로스 철학을 받아들였던 베르길리우스(Vergilius, 영어로 Virgil)나 호라티우스(Horatius) 같은 시인들은 세상일로부터 멀찍이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자세를 가졌던 이유다.

   
▲  에피쿠로스. 픽사베이

에피쿠로스 철학은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전체의 일을 신경 쓰기보다는 나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나의 내면의 문제에 집중하고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스토아 철학에서 알려주는 것처럼 이 세상의 질서, 섭리 같은 거창한 것을 알려고 추구하지 말고, 삶에서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에서 만족과 기쁨을 찾으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결국 개인주의로 귀결되고, 무엇보다 자신만의 만족과 기쁨을 주는 쾌락을 추구하는 개인주의는 쾌락주의와 연결된다. 이런 면 때문에 흔히 에피쿠로스 철학을 쾌락주의(快樂主義, Hedonism)라고 부른다.

하지만 에피쿠로스 철학에서 추구하는 쾌락은 단순히 육체적 쾌락이 아니었다. 물론 쾌락이란 우리가 원하고 바라던 것을 얻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따라서 욕망이 클수록 쾌락도 커진다. 하지만 욕망이 충족된다고 꼭 쾌락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 있어서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는 순간, 심각한 우울증과 허무감에 빠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주목해서 에피쿠로스 철학은 욕망이 충족된다고 하더라도 쾌락은 잠깐 동안만 지속되고 이전보다 더욱 큰 고통을 남긴다며 욕구와 욕망을 우리가 잘 구분하고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별히 에피쿠로스 철학에서 참된 쾌락은 엄청나게 큰 쾌락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이 없으며 불안이 없는 평안한 상태를 뜻한다. 이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성적으로 절제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죽음은 인간 존재의 절대적 소멸이므로, 죽음이 찾아오면 자신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고통도 느낄 수 없다. 에피쿠로스 철학은 육체의 고통을 피하는 것, 사치와 향락을 멀리하는 것,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을 제시했다.

흔히 에피쿠로스 학파라고 부르는 철학 사조는 에피쿠로스(Epicurus, 기원전 341-271)의 집 안 정원(헬라어 <케포스>)에서 수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정원 학교에 여성이나 노예가 오는 것을 막지 않았고 오히려 장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 철학은 이 세상과 개인을 물질적으로 이해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왜냐하면 외부적인 자극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스토아 철학의 <아파테이아>(부동심, 不動心)나 개인 내면에서 불안과 고통이 없는 에피쿠로스 철학의 <아타락시아>(평정심, 平靜心)은 모두 인간의 영혼과 마음, 감정과 정신뿐만 아니라 그것에 자극을 주는 것들을 물질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을 유물론적으로 이해하는 철학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서 정신적이며 관념적인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일깨운 철학이 이후에 나타난다.
 

◎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 철학 : 일자(一者), 정신과 영혼의 유출

플라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데아계의 모방이고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봤다. 그리고 이데아는 물질적인 것을 초월한 관념적이고 정신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플라톤의 철학을 한편으로는 이어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롭게 설명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플로티누스(Plotinus, 기원후 205-270)이다. 북아프리카의 리코폴리스 출신이었던 플로티누스는 로마에 학교를 세웠다.

   
▲  플로티누스. 위키 백과

플로티누스의 철학은 신플라톤 철학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플라톤의 철학을 새롭게 했기 때문이다. 플로티누스의 철학과 플라톤의 철학이 다른 점은 이 세상의 것들이 이데아의 그림자가 아니라 실재로 어느 하나로부터 유출된 것이라는 설명에 있다. 플로티누스에 따르면 완전히 초월적인 일자(一者, the One)가 있고 이러한 존재로부터 지성(<누우스>, Nous)이 첫 번째로 유출되고 그 이후 영혼(프쉬케, Psyche)이 두 번째로 유출됐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유출이 진행되는데, 이 세상의 것들은 일자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물질적인 것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일자(一者)는 선(善)으로 이해되기에 일자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물질은 지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또한 악(惡)으로 규정된다.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 철학은 이 세상에 있는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존재 자체로부터 거리감에 따라 나누고 선과 악으로 설명하려고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플로티누스의 철학을 흔히 유출론(流出論, emanation theory)이라고 부른다.

플로티누스는 인간은 본질상 영혼이지만 이 세상에서 임시로 존재하기 위해서 물질을 취하는데 바로 몸, 즉 육체이다. 플라톤이 육체로부터의 영혼의 해방을 이야기했듯, 플로티누스 역시 인간은 물질적 존재인 육체로부터 영혼과 지성이 해방되기 위해서 살아야 하며 결국 영적인 것으로 되돌아 올라가 마지막 순간에는 일자와 다시 연합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영어로 어거스틴)와 기독교 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비록 플로티누스에게 있어서 일자(一者)는 비인격적인 초월적 실재로서 기독교의 하나님과는 다른 존재이지만 초대 기독교에서 일부는 일자와 정신, 영혼을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이 일자로부터 나온다는 플로티노스의 설명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성경의 창조를 이해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다만 플로티노스의 유명한 제자인 포르피리우스(Porphyrius, 영어로 Porphyry, 기원후 234-305)는 오히려 <기독교 논박>(Against Christianity)을 저술했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 환대의 철학, 크리스천은?

스토아 철학은 고대 사회에서 공고(鞏固)했던 노예제도에 놀라운 시선을 제공했다. 다름 아니라 노예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스토아 철학은 노예였던 에픽테투스나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동일한 인간으로서 대하고, 사회적 신분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따를 우주적 법칙, 섭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예 해방이나 신분 철폐 같은 급진적인 주장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더라도 노예를 시민과 동일한 존재로 보지 않던 고대 사회에서 노예를 환대하는 철학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참된 자유와 행복은 신분과 상관없이 노예도 누릴 수 있다는 스토아 철학의 주장과 에픽테토스의 실례(實例)는 고대 로마 제국의 수 많은 노예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으리라 예상된다.

사람들은 에피쿠로스 철학이라고 하면 쾌락주의라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에피쿠로스는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에피쿠로스는 여성들과 노예들을 그의 학교에 받아들여 같이 공부하게 했기 때문이다. 여성이 교육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 당연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에피쿠로스의 행동은 남녀 간 성차별을 극복하는 단초(端初)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에피쿠로스의 정원 학교에서 남성과 여성이 함께 공부했다는 점에서 남녀평등사상을 최초로 주장하고 실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  배제와 포용(좌), 환대와 구원(우)

신분으로 차별하지 않고 노예도 받아들였던 스토아 철학과 성별로 차별하지 않고 여성도 받아들였던 에피쿠로스 철학을 환대의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환대의 철학을 크리스천은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까?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알려질 당시는 이러한 환대를 내세웠던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 철학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사도행전은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행 17:18)라며 아테네에서 있었던 철학 논쟁을 알려준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라고 선포했다. 심지어 바울은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위해서 주인인 빌레몬에게 편지를 보냈으며 오네시모를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몬 1:10)이라고까지 불렀다. 이러한 점에서 바울은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 철학보다 더욱 적극적인 환대의 가르침을 전하며 몸소 실천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기독교는 원래부터 환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구약성경에서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가르침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으며(출 22:22, 신 24:17, 19, 20 등) 나그네 혹은 객(客)을 사랑하고 대접하라는 가르침도 여러 번 나타난다(신 14:29 등). 한국 개신교는 천민인 백정을 입교시키고, 여성과 남성이 함께 예배를 드리며 여성 교육에 앞장섰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힘없고 소외된 사람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세상 속에서 오히려 환대하며 신앙 유산을 이어가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추천도서>
미로슬라브 볼프, <배제와 포용>(IVP, 2021)
조슈아 지프, <환대와 구원>(새물결플러스, 2019)

이신성 기자 shinsunglee73@gmail.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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