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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혜와 세상 지혜

기사승인 2022.07.04  15: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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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언의 영성21

방동섭 교수/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지혜는 히브리어로 ‘코크마’라고 하는데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이고, 또 다른 것은 세상이 주는 지혜이다. 이 두 가지 지혜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람들은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그러나 잠언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 지혜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시고 있다.
 

세상 지혜로 살면

세상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이 가장 지혜롭게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아무리 지혜롭게 산다고 해도 그들은 이 세상의 지혜의 배후에 사탄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혜롭게 살고 최선을 다해 산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사탄이 주는 지혜를 따라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는 왜곡된 가치를 따라 가장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며 사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몇 년 전에 고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하바드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한 한인 학생이 기숙사에서 음독자살했다. 죽음의 이유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세상적으로는 아주 지혜로운 청년이었지만 죽는 순간에 지혜롭지 못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를 양육하기 위해 헌신했던 부모들과 주변의 친구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는가?
 

다 아는 것처럼 말한다

   
 

잠언은 마귀가 주는 세상 지혜를 따라서 살 때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되는지 상세하고 보여주고 있다. 첫째, 세상 지혜를 따라 살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면서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말하게 된다는 것이다. 잠언은 “미련한 계집이 떠들며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집 문이나 성읍 높은 곳에 앉아 있다”고 하였다(잠 9:14). 여기 ‘미련한 계집’은 사탄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사탄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데 떠들고 있다”는 것이다. 사탄이 ‘떠들고 있다’는 것은 ‘선동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사탄이 교묘하게 지식과 정보를 조작해서 언론을 통해 때로는 소위 전문가를 통해 사람들을 선동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사실인 줄 알고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조작된 진리를 마치 진리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탄은 사실 자신이 이끄는 사람들에 대해 그 어떤 것도 책임지지 않는 존재이다. 그는 단지 선동할 뿐이다. 나치 독일에서 선전부 장관을 했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는 “프로파간다(선동)는 사랑과 같다. 일단 성공한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그 과정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하였다. 바로 사탄이 이러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을 선동은 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 잠언은 이러한 사탄이 심지어 ‘길을 바로 가는 행객’까지 불러 “이리로 돌이키라” “이 길이 옳은 길이라”고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잠 9:15-16절).
 

자기 함정에 빠지게 된다.

둘째, 사탄이 주는 세상 지혜를 따라 살면 사람들은 잘 산다고 하면 할수록 실제는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탄은 가장 지혜로운 존재인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어리석은 존재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아는 것 같지만 그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계시와 그 깊은 뜻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사탄이 “성읍 높은 곳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잠 9:14). 이것은 사탄이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월드 리더처럼 활동하면서 소리를 높이고 권세를 부리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악하고 가장 무지한 존재인 사탄이 이끌고 있는 이 세상 한복판에서 사람들은 참 진리를 빼앗기고 갈 길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런 인생을 향해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라고 하였다(시 7:15). 사탄이 주는 세상 지혜로는 사람들이 기껏 지혜를 낸다는 것이 오히려 스스로를 위험하게 만들어 죽는 길로 가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가장 지혜롭게 사는 것 같이 생각하지만 결국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다. 사탄에게 속아 자기 기만적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궤변을 주장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지혜가 주는 것은 왜곡된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세상 지혜의 특징은 자기중심적 논리가 강하다는 것이다. 주관적인 논리를 따라 살기 때문에 결국 자가당착에 빠지게 될 것이다. 잠언은 이 세상 지혜를 따라 사는 자들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잠 9:17). 이상한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사탄은 이런 주장을 통해 세상 지혜를 따르는 자들을 선동하고, 악을 조장하고, 죄악을 합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도 세상의 지혜에 현혹이 되어 따라가게 된다면 얼마든지 자기중심적이 되거나 자가당착적인 궤변으로 인생을 왜곡되게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로 살면

일반적으로 세상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을 말할 때 머리가 좋거나, 영리하거나, 처세술에 능한 사람을 지칭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사는 사람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을 뜻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만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를 섬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하였다(잠 9:10). 이 말씀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라”는 뜻도 되고, “여호와를 경외할 때 진정한 지혜를 알게 된다”는 의미도 된다. 하나님의 지혜는 거룩하신 자이신 하나님을 잘 알 수 있도록 깨달음을 주는 지혜이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얻으면 얻을수록 그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더 잘 섬기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인생을 살면 우리에게 주시는 진정한 축복이 넘치게 될 것이다. 잠언은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길어질 것”이라고 하였다(잠 9:11). 지혜로운 자는 장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오래 살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자는 사악한 자의 꾀에 빠져 악한 일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악인이 멸망 당할 때 그 멸망으로부터 피하여 생명의 해가 길어지는 것이다.

잠언은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라”고 하였다(잠 9:12). 이 말씀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따라 살 때 가장 큰 유익을 누리게 되는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지혜가 주는 많은 유익을 경험하게 되는 대상은 바로 그 지혜를 따라 사는 그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 없이 사는 거만한 인생은 “홀로 해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12절).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지 못할 때 그 손해를 당하게 되는 대상도 그 자신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없어 악의 정체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살게 되면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잠 11:19).
 

부모를 기쁘게 하는 자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사는 사람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도 하나님의 지혜는 그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잠언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인생을 사는 자는 우선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자’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잠언은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고 하였다(잠 10:1). 이 말씀은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그가 부모님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자들은 아들은 부모를 기쁘게 하지만, 미련한 아들은 근심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잠언은 아무리 스스로 지혜롭다고 주장하고 세상에서 성공한 인생이라고 해도 부모님을 함부로 대하는 자는 지혜롭지 못한 인생이라고 보는 것이다.
 

불의한 재물에 탐을 내지 않는다

둘째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사는 사람은 결코 불의한 재물에 미련을 두거나 탐을 내지 않는다. 세상 지혜로 사는 인생들은 불의한 재물에 관심이 많다. 남의 재물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계략을 짜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사는 자는 불의한 재물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불의한 방식으로 얻은 재물은 무익하고 가치가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잠언은 “불의한 재물은 무익하다”고 하였습니다(잠 10:2).
 

최선을 다하는 삶

셋째,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사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부지런히 일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된다. 잠언은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된다”고 하였다(잠 10:4). 게으르게 살아도 잘 살 수 있는 나라는 복지 국가가 아니라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사는 사람은 게을러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일에 대해 마음을 다하여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다(골 3:23).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일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사는 사람의 특징이다. 지혜로운 자가 부지런하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은 시간과 주어진 기회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생은 시간의 가치와 주어진 기회의 한계를 잘 모르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시간과 기회가 언제나 있는 줄 알고 게으름을 피우다가 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농부는 추수할 때에 시기를 놓치면 일 년 동안 땀 흘린 농사를 모두 허탕 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생은 심지어 추수를 해야 하는 때에도 잠을 자는 것이다. 잠언은 “추수 때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잠 10:5). 영적인 기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영적으로 추수할 때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고 하셨다(요 4:35). 만일 이 시대의 영적인 추수기를 놓치고 선교의 기회를 잃어버리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 될 것이다. 주님을 섬기는 기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이 섬기는 기회를 주셨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지혜로운 자의 모습입니다.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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