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하나님 나라의 선교 방향성’

기사승인 2023.01.25  09:58:46

공유
default_news_ad1

- 선교적 관점에서 보는 마태복음(2)

방동섭 교수/ 미국 리폼드 신학대학원 선교학 박사,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글로벌 비전교회 담임

   
▲ 방동섭 교수

  선교신학적 기근

선교 신학적 기근이 계속되면
한국교회의 선교는
움직임은 많아도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리고
지속 가능한 선교의
영적 에너지를 상실하면서
결과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글에서는 마태복음이 메시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구속 사역과 열방을 향한 메시야 선교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간과된 부분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이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 선교의 방향성과 그 내용에 대해 마태복음처럼 상세하게 기록한 책은 없을 것이다. 책 전체가 예수님이 직접 몸으로 실천하신 선교가 무엇인지, 또 장차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교회가 추구해야 할 선교적인 삶의 내용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마태가 그의 복음서를 통해 그의 독자들에게 가장 알리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 계획이 메시야의 삶과 사역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마태복음을 읽지 않으면 마태가 제시하고자 하는 복음서의 목적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실패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마태복음의 특징에 대해 데이비드 보쉬(David Bosch)는 “본질적으로 선교적인 본문이다”라는 것을 지적하면서 “마태가 복음서를 쓴 것은 선교적인 비전 때문이며, 예수의 생애에 대한 전기를 쓰려는 것보다는 위기에 직면한 기독교 공동체를 향해 어떻게 교회의 사명과 선교를 이해해야 하는지 지침을 제공하려고 쓴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1)  그러기에 이 시대의 교회가 마태복음을 자세히 관찰하여 본다면 예수님의 선교적인 삶을 통해 이 시대의 선교가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을 상세하고 분명하게 배우게 될 것이라고 본다. 특히 이 시대의 제자들은 마태복음을 통해 “선교에 동참할 때 그들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게 될 것이다”라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확인하고 선교에 헌신하려는 큰 동기를 느끼게 될 것이다. 2) 

   
 

교회는 현재 이 시대의 가장 큰 사상적 조류라고 할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깊은 영향력에 직면하여 있다. 현대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사회, 문화, 경제, 예술, 종교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포스트모던 사상의 핵심 가치라고 할 수 있는 ‘해체주의’(disconstruction)와 ‘상대주의적 세계관’의 깊은 영향을 받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절대적인 진리와 가치를 부정하고 모든 것을 상대화시키는 포스트모던적 사상으로 인해 기존에 가졌던 가치 체계가 급속하게 무너지면서 기독교인들의 많은 수가 영적인 대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이 신학과 교회 내부에까지 급격하게 몰아치면서 ‘모든 종교에 구원의 길이 있다’라고 하는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usm)시대가 가속화되고 있고 선교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까지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격동의 시대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는 교회 공동체는 어떤 길로 가야 하는가? 또 교회가 마땅히 가야만 하는 선교의 길은 무엇인가? 이 답을 정확하게 얻지 못한다면 교회 공동체는 그 방향성을 상실하고 표류하면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기 위해 마태복음을 깊이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해외에 선교사를 많이 파송했다고 하는 불필요한 자부심을 지나치게 내세우는 부끄러운 측면이 있었다. 또한 수많은 선교 세미나와 선교 대회를 경쟁적으로 유치하고, 교회마다 선교 현장에 단기 선교팀을 보내며, 거대한 선교 프로젝트를 시도하는 등 가시적인 선교적 활동이나 움직임에 집중하는 경향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선교를 성경적인 토대 위에 세우고, 선교 사역을 신학적으로 뒷받침하는 학문적 노력은 매우 부족했다. 그 결과 선교가 마땅히 가야 하는 방향성을 상실하면서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선교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교회

교회가 세워진 이후
선교 없이 존재했던 때는
한 번도 없었다.
만일 어느 때든지
교회가 선교 없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 교회는 진정한 의미의 교회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 글에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선교’ 혹은 ‘선교사’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어떤 특정한 선교지에서 시도하는 사역이나 해외에 파송된 소수의 전문적인 선교사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필자가 본 글에서 사용하는 ‘선교’ 혹은 ‘선교사’라는 용어는 광의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전 신자 선교사’라는 사상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되어,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 세상에서 선교를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상이 이 책의 기저에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사실 마태복음에는 ‘선교’라는 용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 대신 ‘천국의 복음을 선포함’, ‘가르침’, ‘약한 것을 고침’ 그리고 ‘제자를 부르고 세움’이라는 표현들이 나온다.3)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제자들 모두가 세상에서 이러한 사역에 헌신하는 것을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선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선교 공동체’이다. ‘선교 공동체’라는 말은 “교회는 단지 선교사를 보내고 후원하는 기관이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선교 공동체’라는 개념 속에는 “교회는 선교 없이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보다 본질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블로우(Johannes Blauw)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지 않은 교회는 없다”라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4) 교회는 어떤 상황이 닥쳐올지라도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세상에서 ‘선교 공동체’로 존재하면서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교회를 구성하는 주님의 제자들은 교회가 진정한 교회로 남을 수 있도록 이러한 선교 정신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신약 성경에 나타나는 ‘초대 교회’를 ‘선교하는 교회’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초대 교회’를 ‘선교하는 교회’라고 부를 때에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몇몇 유명한 선교사를 배출했던 교회였다”라는 뜻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초대 교회를 ‘선교하는 교회’라고 하는 것은 “그 교회를 구성하는 제자들이 모두 선교의 정신으로 각자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선교를 실천하며 살아가던 교회였다”라는 뜻이다. ‘초대 교회’가 300년 만에 로마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시대의 크리스천들은 모두 각자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증인의 삶, 선교사의 삶을 실천하는데 게으르지 않았으며 그 사명을 위해 생명을 드릴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주후 1세기 지상 위에 세워진 교회는 한마디로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위해 세워진 공동체였고 할 수 있다. 오순절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진 이후 사실 교회는 선교 없이 존재한 때가 한 번도 없었다. 만일 어느 때든지 교회가 선교 없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 교회는 진정한 의미의 교회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본다. 선교 없는 교회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에 교회를 세우셨을 때 그 교회는 처음부터 독특한 사명이 주어졌다. 그것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거룩한 사명이다.5) 이 사명을 위해 교회는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위임하셨던 이 선교적인 명령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는 초대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제자들 위에 충만하게 임하셨다.6) 그 결과 초대 교회의 제자들은 성령의 권능으로 무장하게 되었고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이 세상을 뚫고 들어가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를 감당하게 되었다.7)

초대 교회 공동체를 구성하였던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자신의 재산과 심지어 생명까지 아끼지 아니하였다. 제자들에게 맡겨주신 거룩한 하나님 나라 선교를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인적 자원과 물질적인 자원을 총동원하여 헌신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초대 교회의 선교적인 정신과 삶을 이해하지 않고는 초대 교회의 본질과 그 역사를 정확하게 이해하거나 충분하게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테리(J. Terry)는 “초대 교회의 역사와 신학은 선교 역사이며 선교 신학이다”라는 글을 인용하면서 “그 누구도 교회의 선교적인 활동을 고려하지 않고는 초대 교회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8)  

 

주(註)

1) David Bosch, Transforming Mission: Paradigm Shifts in Theology of Mission, (Maryknoll: Orbis Books), 1994, 57.

2) Ibid., 83.

3) 3:1, 4:17, 23, 5:2, 9:35, 10:7, 11:5, 12:41, 28:19-20. 

4) Johannes Blauw, The Missionary Nature of the Church: A Survey of the Biblical Theology of Mission, (London: Lutterworth Press, 1962), 121. 

5) 마태복음 28:18

6) 행 2:1-4.

7) 행 1:8, 14-42, 3:11-26, 4:1-22, 7:4-25, 26-40, 10:1-48.

8) John Mark Terry, "The History of Missions in the Early Church" in Missiology: An Introduction to the Foundations, History, and Strategies of World Mission, ed. by Ebbie Smith and Justice Anderson, (Nashville: Broadman & Holman Pb.), 1998, 166. 

 

 

방동섭 교수 webmaster@amennews.com

<저작권자 © 교회와신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교회와신앙> 후원 회원이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은행 607301-01-412365 (예금주 교회와신앙)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