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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봄만 있다면

기사승인 2023.03.03  10: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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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경애 사모 컬럼

장경애 사모/ 최삼경 목사

   
▲ 장경애 수필가

  3월을 봄이라 일컬어도 뭐라 할 사람은 없다. 입춘은 이미 2월 초에 지났고, 대동강 물도 녹기 시작한다는 우수 역시 2월에 지났다. 개구리가 동면에서 기지개를 핀다는 경칩이 6일인 것을 보아도 봄은 봄이다. 갈 것 같지 않았던 겨울 동장군도 슬금슬금 떠나고 있다. 하지만 ‘봄바람은 품으로 기어든다’라는 말처럼 몸으로 느껴지는 추위는 아직도 우리를 움츠리게 한다. 햇볕은 따스하지만 ‘꽃샘추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고 누가 봐도 아직 봄은 아닌 듯하다. 천문학적으로 봄은 춘분에서 하지까지를 가리킨다고 하니 3월 하순이나 되어야 진정한 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베란다엔 작은 움직임이 보였다. 누렇게 변해버린 나뭇잎 사이에 붉은 꽃망울이 수줍게 꿈틀거리더니 결국 자신의 자태를 드러내고 말았다. 또한 프리지어 잎사귀가 어느 날부터 꽃대와 함께 왕성하게 자라 급기야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노란색이 아닌 연보라의 꽃이 사순절을 알려주는 전령사처럼 한 몫을 톡톡히 감당하고 있다. 그 향기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 당하신 고난과 함께 다 함 없는 사랑을 알려주는 듯 향기롭다. 날씨는 차가워도 봄은 그렇게 시작되나 보다.

사계절 중 어느 계절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그 대답은 참으로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만물이 기지개를 피고 생동하는 봄을, 어떤 사람은 싱그러운 푸르름과 바다가 부르는 여름을, 어떤 사람은 인생을 생각하게 하고 사색할 수 있는 가을을, 어떤 사람은 하얀 눈의 겨울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각자의 취향과 기질에 따라 좋아하는 계절 역시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계절을 좋아하는지는 나이와 처해 있는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대체로 젊은 사람일수록 여름이나 가을을 좋아하고 노인이 될수록 봄을 좋아하는 경향을 보게 된다. 여름만 빼놓고 모든 계절을 좋아하는 나 역시 젊은 시절엔 유독 가을을 좋아했다.

봄은 내가 태어난 계절로 잠자던 온 세상이 잠에서 깨어 꿈틀거리듯 온갖 나뭇잎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고 갖가지 꽃들이 멋지게 자태를 드러낸다. 자연히 생동감이 느껴지고 희망의 부푼 마음을 선사하니 좋다. 그리고 가을은 넓은 들에 익은 곡식이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푸른 하늘과 갈색의 산하가 인생을 생각하게 하니 더없이 좋다. 또한 겨울은 흰 백색의 산야가 고요함을 느끼게 하고 또 동시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마스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러나 여름은 견디기 힘들어 좋아하지 않는다. 더위를 못 견디는 나의 체질과 건강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싫어한다고 없으면 안 되는 꼭 존재해야 하는 계절이 여름이다. 여름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작열하는 태양으로 온갖 곡식이 익어야 우리가 살아갈 수 있으니까 더욱 그렇다. 그러니 사계절 모두는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꼭 있어야만 하는 계절이다. 하기야 하나님께서 어련히 잘 알아 우리에게 다양하게 계절을 주셨을까.

봄은 시작의 계절이다. 계절의 주기로 볼 때 ‘한 해의 계획은 봄에 세우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시작을 뜻하는 첫 번째 계절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시작의 계절인 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봄은 뭔지 모를 기대감과 희망을 준다. 봄에는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고, 긴 겨울잠을 자던 온 삼라만상이 기지개를 피는 때다. 추위로 인해 죽은 듯 조용하던 생명체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하여 무엇인가를 시작하려고 부지런해지는 역동의 계절이 바로 봄이다.

그런가 하면 봄은 푸르름의 시작이다. 봄에는 여리고 가냘픈 새싹이 얼어붙어 단단한 땅을 뚫고 나온다. 또한 앙상하게 말라버린 듯한 나뭇가지에 연록의 물이 오르는 계절이다. 언제부터인지 녹기 시작한 깊은 계곡의 얼음 밑으로 활기차게 흐르는 물소리까지 생동감 있게 들리는 계절이 봄이다.

이렇듯 많은 것들이 봄을 알리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봄에는 소중한 예수님 부활의 날이 들어 있다. 이 예수님의 부활은 새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으로 죽음이 부활로 재탄생하는 희망과 환희의 날이다.

봄은 정서적으로 화창한 자연에 의해 느끼게 되는 흥겨움과 온화함이 있다. 그래서 봄은 좋은 계절이다. 이처럼 봄은 생동하는 움직임이 있으며, 날씨와 기온은 우리가 살기에 최고로 적합하다. 게을렀던 우리 마음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고 그래서 새로운 결심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저력이 있는 계절이 봄이다.

내가 잘 아는 한국음식점 중에 ‘늘 봄’이라는 상호를 가진 식당이 있다. 이름이 풍기는 분위기와 어감이 좋다. 그래서인지 이 이름을 상호로 하는 음식점이 이곳저곳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날, 늘봄식당에서 음식을 시켜 놓고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사계절 중에 봄 앞에 ‘늘’ 자가 있는 것처럼 사계절에 하나씩 ‘늘’ 자를 넣어 ‘늘’ 자 다음에 여름, 가을, 겨울을 차례로 넣고 읊어 보았다. ‘늘 여름, 늘 가을, 늘 겨울’. 그런데 ‘늘 봄’ 하나를 제하고는 발음하기에도 어색하지만 자연스러움도, 풍기는 어감도, 그 뜻도 맘에 들지 않았다.

여름이 좋다 한들 늘 여름이면 좋을까? 아무리 바다가 좋고 해변이 좋아도 늘 거기서 살 수만은 없고, 이제 좀 서늘해졌으면 좋겠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더위에 지쳐 일의 능률을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가을이 좋다 한들 늘 가을이면 좋을까? 늘 사색만 하면서 지낸다면 아마도 우울증에 빠져 생동하는 만물이 그리워질 것이다. 또한 겨울이 좋다 한들 늘 겨울이면 또 어떠할까? 눈이 좋아도 날마다 눈 속에서 지낸다면 ‘이제 그만’이라는 큰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올 것이고, 추위에 지친 움츠린 몸과 마음이 따뜻함과 생동감을 그리워하며 아우성치지 않을까?

그렇다면 ‘늘 봄’은 어떠한가? 봄 앞에는 다른 계절 앞에 붙인 ‘늘’ 자보다 어색함이 별로 없다. 다른 계절에 비해 봄은 우리에게 희망을 던져 주기에 늘 봄처럼 살고 싶다.

늘 봄처럼 늘 봄에서 살고 싶다. 봄의 여린 새싹을 보며 천진한 아이들을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봄은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품고 성장하는 아이들의 계절이다. 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세파에 물들지 않은 순진함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라는 성경 말씀처럼 마음만은 늘 봄이었으면 좋겠다. 영어로 봄은 스프링(spring)이다. 샘 솟는 희망으로 늘 봄처럼 살고 싶다.

그러나 만일 늘 봄만 있다면 그렇게 좋은 봄도 좋은지 모르고 그날이 그날이니까 지루하고 나태해질 수도 있다. 겨울이 추우면 추울수록 봄이 더 기다려진다. 그러고 보면 늘 봄만 주지 않고 사계절을 주신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계절은 변하지만, 마음만은 늘 봄처럼 따뜻하고 생동감 있게 살고 싶다. 

장경애 kyung556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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