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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크리스마스 ‘새벽별’

기사승인 2022.12.19  1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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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호 케냐 선교사의 편지

정광호 선교사/ 현 케냐 주재, GMS 원로선교사

   
▲ 정광호 선교사

  지난 2020년 12월 21일 밤에는 태양계에서 제일 큰 두 개의 위성인 목성과 토성이 수백 년 만에 한 번 가까이 ‘접합’(conjunction)하였다.  휴스턴 대학교, 천체물리학 교수, 패트 하르티간(Patric M. Hartigan) 교수는 기록상으로 1226년, 1623년, 2020년의 접합들을 발표하였다(CNN 2020.12.21. 보도). 지구의 지상에서는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가 필수적인 때에, 천상에서는 두 위성들이 친구들처럼 가까이 만난다는 것이다. 저들의 접합이 크리스마스 때 일어났으므로 “크리스마스의 별”이란 별명을 받게 되었다. 케냐의 나쿠루에서는 저녁 날씨가 구름이 끼어 볼 수 없었다.

목성은 태양계의 위성 중에 제일 큰 위성으로서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Nicolas Copernicus, 1473-1543)의 지동설을 뒷받침한  갈릴레오 갈리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가 1610년에 목성주위의 4개의 위성과 토성주위의 반지 시스템을 처음으로 보았다. 토성은 30개 이상의 위성을 갖고 있다. 희랍 로마신화에서는 목성은 제우스 신으로서 하늘과 빛과 날씨를 주관하는 신이며, 토성은 농사일을 주관하는 신이다. 목성과 토성은  사실 자체에 빛을 발하는 별들이 아니며 별들로부터 빛을 받는 위성들이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 와 갈릴레오의 태양 중심설(지동설) 이전의 시대에는 목성과 토성들이 별처럼 여겨졌다.

   
 

성경의 동방박사들이 보고 따라온 “유대인의 왕”의 별(마 2:1-2)은 메시아를 가리킨  “새벽별”(계 2:28; 22:16; 벧후 1:19)이다. 모세는 광야에서 장차 오실 선지자 메시아(신 18:15)와 메시아의 별(민 24:15-19)을 예언하였다. 고대 왕국에서는 왕들의 권위와 위엄, 영광과 힘을 별들로 비유했으며, 위대한 왕들이 출현할 때 이상하게도 별들이 나타났다(예, 바벨론과 이집트의 왕들, 사 13:10; 14:12; 겔 32:7, Keil and Delitzsch, Pentateuch, Vol. III,  Eerdmans, 1998, p. 192). “고대 천문학에서 위성들이나 별들이 ‘접합’할 때, 왕이 출현한다고 믿었으며”  “현대의 천문학자들도 목성(왕의 별)과 토성은 유대인의 별들로서 기원전 7년에도 세 번이나 접합이 있었다”고 추정한다(W. D. Davies and Daler C. Allison,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tthew, Edinburgh: T. & T. Clark, 1988, pp. 233-235).

동방박사들이 고대 바벨론 지방에서 유다 베들레헴까지 그렇게 멀고 험난한 여행길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은 저들의 여행을 안내한 크리스마스의 새벽별 때문이었다. 왕의 왕(마 2:1; 미 5:2)에게 황금을, 대제사장(히 7:27 )에게 드리는 유황을, 대선지자(신 18:15)에게 드리는 몰약을 헌물하면서, 메시아의 탄생을 축하하고 저들은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다.

티 에스 엘리엇(T. S. Eliot, 1888-1965)은 마태복음의 동방박사들과 예수의 탄생을 배경으로 <동방박사들의 여행>(Journey of the Magi)이란 크리스마스 시를 썼다(1927년 발표). 엘리엇은 예수의 탄생을 목격한 동방박사들이 자기들의 죽음을 경험한 것을 묘사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의 탄생으로 우리의 과거는 죽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는 의미였다.

“우리가 그토록 그 길을 간 것은
탄생을 보기 위함이었던가 죽음을 보기 위함이었던가?
확실히 거기엔 탄생이 있었지.
증거도 있고 의심도 없다. 나는 탄생과 죽음을 보았건만.
그들은 다른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나 이 탄생은 우리에겐 괴롭고 쓰라린 고뇌였다. 
‘죽음’처럼, 우리의 ‘죽음’처럼”(조신권 역).

동방박사들이 고국을 떠나 혹독한 겨울, 험산준령의 여행 도중에 낙타들은 지쳐 쓰러지고, 본국에 있을 때 편안한 여름 별장에서 예쁜 아가씨들이 제공한 시원한 쥬스를 마셨던 것을 회고하였다, 여행지마다 환영을 받지 못하고, 어리석은 여행이라고 핀잔을 받으면서, 유대땅 베들레헴까지 와서 초라한 마구간의 아기 예수를 보고 저들은, 탄생과 죽음을 보았다. 즉, 메시아 탄생을 본 동방박사들이 죽음을 보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누가복음서에서 경건한 시므온이 마리아가 예수를 안고 결례의 예식을 위해 성전에 왔을 때, 이스라엘의 구원이요 이방의 빛이신 예수의 탄생과 죽음을 찬양하였던 것(눅 2:22-35)과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다.

오랜 여행 후에 유대땅에 도착하여 “나직한 하늘엔 세 그루의 나무”(골고다의 세 십자가 상징)와 “한 늙은 백마”(계 6:2; 19:1 의 백마 탄 자)를 보았던 동방박사들이 자기들의 부귀영화와 지위와 권세를 버리고 시련과 연단을 통해서 새로운 신앙의 세계로 개종한 것을 비유한다. 그들은 고국에 돌아와서 낡은 율법의 지배를 받고, 신의 은총이 없이 우상을 숭배하는 자기 백성들을 보고 “또 한 번 죽고 싶노라고” 고백한다. 또한 엘리엇은 자기의 개종(성공회로)의 경험에 비유시킨다. 옛 세계를 떠나 죽고, 새로운 세계로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생명의 주가 탄생할 때, 우리의 과거 모든 행실은 죽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날 때가 옛사람이 죽는 때이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그의 특별계시를 보이실 때, 우주적인 자연현상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 노아의 홍수, 출애굽 때에 홍해의 갈라짐, 광야에서 불과 구름 기둥, 태양의 멈춤, 십자가의 형벌 때 어두움과 지진의 발생 등 초자연적 환경을 이용하셨다.  코로나의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기에 목성과 토성의 접합은 동방박사들의 여행을 인도한 크리스마스의 새벽별의 출현과 연결시켜 주었다.

<동방박사들의 여행>
“추운 길을 왔더니라
여행을 하기에는, 그런 먼 여행을 하기에는
일 년 중에서도 가장 나쁜 때에,
길은 깊이 빠지고 날씨는 매섭고,
때는 바로 한 겨울
게다가 낙타들은 찰상 나고, 발은 까지고, 꾀부리며
녹는 눈구덩이에 드러누었느니라.

언덕 위의 여름 별저(별장)과 노대(무대)와
과즙들을 나르는 비단옷 입은 처녀들을
못내 아쉬워 한 때도 있었느니라.
그때 낙타군들은 욕질하고, 투덜대고,
달아나고, 술과 계집을 원하고,
밤불은 꺼졌는데 잠잘 곳은 없고,
도시는 적의를 품고 소읍(작은 마을)은 불친절하고
촌락은 더럽고 비싼 값을 요구하고,
실로 우리는 고생이 많았느니라.
결국 우리는 밤을 새워 가기로 하고
토막잠을 잤건만,
우리 귓전에선 노래하듯
이건 모두 어리석은 것이라고 일러주는 말소리가 떠나지 않았느니라.

이윽고 우리는 새벽녘에 설선(눈 덮인 곳) 아래 물기가 있고
초목 냄새 풍기는 다스한 어느 골짜기로 내려갔느니라.
그곳엔 시내가 흐르고 물레방아가 어둠을 치고
나직한 하늘엔 세 그루의 나무가 서 있고
한 늙은 백마가 풀밭을 뛰어갔더니라.
그리곤  우리는 문방위에 포도덩굴이 덮여 있고,
여섯 사내들이 열린 문가에서 은전를 걸고 주사위를 던지며,
발로는 빈 가죽 술부대를 차고 있는 어느 주막에 이르렀느니라.

하나 거기서도 알 길이 없어 다시 길을 떠나
저녁에 때 맞춰 그곳을 찾아 도착했으니
그것은 만족스러운 일이라 말할 수도 있으리라.
회상컨대 이 모든 것은 오래 전 일이언만
나는 그런 일을 다시 한 번 하고 싶노라. 하나
이것만은 규정짓고 싶노라, 이것만은.

우리가 그토록 그 길을 간 것은
탄생을 보기 위함이었던가 죽음을 보기 위함이었던가?
확실히 거기엔 탄생이 있었지.
증거도 있고 의심도 없다. 나는 탄생과 죽음을 보았건만.
그들은 다른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나 이 탄생은
우리에겐 괴롭고 쓰라린 고뇌였다. ‘죽음’처럼, 우리의 ‘죽음’처럼.

우리는 우리의 고장, 이 왕국으로 돌아왔건만
낯 설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이방신)들을 붙들고 있는,
여기 이 낡은 율법 가운데서는 이 이상 편함이 없다...
나는 또 한 번 죽고 싶노라"(조신권 역).

정광호 선교사 webmaster@ame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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