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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인 하나님은 죽었다”

기사승인 2003.03.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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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의 죽음의 신학

 

   
▲ 니체
1960년부터는 급진적인 신학이 일어난다.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본 회퍼의 저술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면서 그의 옥중서신은 서구 사상계에 큰 영향을 준다. 가장 최초로 일어났던 급진신학은 사신신학이었다. 윌리엄 해밀턴과 토마스 알타이저가 선두에 서 있었다. 사신신학은 큰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여러 급진운동의 물꼬를 열어준다.

◆  사신신학의 배경

철학자 칸트나 그를 따르는 신학자 릿츨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을 거부했다. 인간의 순수이성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흄과 같은 경험주의자들은 지식이나 실체를 오감으로 알 수 있는 물질세계에 한정시켰다. 그에게 하나님은 경험적으로 증명될 수 없었다. 성경의 내용은 신화였다.

니체는 하나님을 찾다가 실망하고 “하나님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사신신학이 나오기 한 세기 전의 일이다. 불트만은 모든 초자연적이며 신중심적인 세계관을 신화로 규정했다. 신화로 가득한 성경을 비신화해서 현대인들에게 바른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틸리히는 초자연주의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존재의 근원이요 존재 자체로 정의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은 존재와 본질을 초월해 있었다. 하나님은 존재가 아니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런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았다. 틸리히는 범신론자였으며 거의 무신론자였다.

감옥에서 죽어 가는 의로운 본 회퍼에게 하나님은 기적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스스로가 하나님 없이 자기의 운명을 지고 가야 했다. 이 극한 상황에서 그는 친구에게 “하나님 없는 세상”과 “종교 없는 기독교” 등의 말을 남겼다. 실제로 무엇을 의미했건 이 말들로 인해 급진주의자들에게는 새로운 문이 열리게 된다.

바르트가 그렇게 강조했던 초월적인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본 회퍼는 그 초월적인 하나님은 단지 공상에만 있고 실생활에서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생활에서는 성숙한 인간 스스로가 자기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했다.

1957년 가브리엘 바하니안은 <하나님은 죽었다>는 책에서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을 정리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신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말이다. 바하니안 자체는 하나님이 죽었다고 믿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이 없음을 인식하는 형태의 기독교의 시작을 말한다.

◆  “신이 죽었다”는 선언

토마스 알타이저는 하나님이 실제로 죽었다고 믿었다. 이 말은 초월자이며 초자연적이며 전능한 존재로서의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 세상에 내재되어 있다. 그 결과로 인간적인 것과 영적 초자연적인 것의 근본적인 차이가 없어지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 이 과정은 삶의 모든 분야에서 계속된다. 교회는 하나님을 다시 살려 하늘에 올리려 한다. 부활과 승천의 교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죽었고 부활도 승천도 하지 않았다. 오직 신자들의 마음속에서만 그리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들은 버려야 한다. 이미 19세기부터 사람들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이제 신자들은 그런 초월적인 하나님의 죽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내재적인 하나님으로 된다.

윌리엄 해밀턴은 이미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하나님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실재나 하나님에 관한 표현들을 믿지 않는다. 이제는 유신론적인 설명들을 무신론적인 설명들이 대치해 버렸다. 현 세상이 점점 더 그렇게 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죽음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인 표현을 대하게 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하나님의 죽음을 선언하고 세속적인 세상은 지적이요 윤리적인 것으로 그 사실을 용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을 해밀턴이 죽인 게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죽었음을 그가 지적할 뿐이었다.

그러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해밀턴은 믿었다. 이미 인류는 성숙해졌기 때문에 스스로들 자기에게 나타난 문제들을 해결할 힘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신화를 제거하고 나면 결국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데.

◆  역시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해밀턴이 알타이저와 함께 쓴 <급진신학과 하나님의 죽음>의 출판으로 사신신학운동은 절정에 달한 후 설득력을 잃어갔다. 그들이 한 일은 현대문화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체를 찾아내어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다. 오늘의 신학자들처럼 신을 잡아 폐기하는 것과는 달랐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을 비우고 낮추셨다. 그래서 이 세상에 들어와서 한계에 갇힌다. 그리고는 십자가에서 죽는다. 자신의 신으로서의 객관적 존재를 부인하고 완전히 인간으로 동화되어 버린다. 이렇게 초월성과 전능성은 없어지고 그냥 인간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희생했던 하나님을 선포한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하자면 그리스도가 초월적이고 전능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 당사자가 된다는 말이다. 정말로 이들은 그리스도에게서 순전한 인간만을 보고 있었다.

여하간 사신신학은 하나님을 제외한 신학이 얼마나 신학이 될 수 없는지 보여주었다. 처음에 니체가 “하나님은 죽었다”고 외쳤을 때는 충격이 있었다. 하지만 60년대에는 두 반응이 있을 뿐이었다. 무신론자들은 없는 신이 죽었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미친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부터 각종 급진 운동이 과감하게 일어나 인간적인 입장에서 신학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세상에 내재하는 하나님은 인간 속에서 그것도 앞장서서 투쟁하는 인간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20세기 후반은 더욱 급히 변하는 세계를 맞이하게 된다.

 

김기홍 목사 khk07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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